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는 거대한 손을 가졌다고 전한다. 좍 펼치면 30㎝로 피아노 위에서 1.5 옥타브에 해당하는 길이다. 이 덕분에 라흐마니노프는 그런 손을 가지지 못한 피아니스트의 인대를 찢어놓을 수 있는 곡을 작곡하고 연주할 수 있었다. 반면에 로베르트 슈만은 ‘국소성 근긴장 이상’ 때문에 피아니스트의 길을 접어야 했다. 이 질환이 있으면, 근육이 부족해 중지를 마음대로 구부리거나 홱 잡아당길 수 없다.
니콜로 파가니니의 손도 기형이었다. 엄지를 손등 위로 구부려 새끼손가락과 맞닿게 하고, 중지 관절을 작은 메트로놈처럼 좌우로 흔들 수 있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유연성이다. 그 결과 파가니니는 높은 음과 낮은 음을 훨씬 많이, 훨씬 빨리 연주할 수 있었다. 분당 1000개의 음정을 연주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게다가 ‘왼손 피치카토’ 같은 특별한 기술도 구사했다. 피치카토는 활 대신 손가락으로 현을 뜯는 연주법이다. 보통의 연주자는 활을 잡는 오른손으로 피치카토를 하기 때문에, 활을 켜거나 현을 뜯는 것 가운데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그 두 작업을 한꺼번에 했던 그는 마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효과를 냈다. 그런 현란한 테크닉 때문에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파가니니의 기형적 손은 유전자 결함 때문으로 보인다. 2009년 미국과학작가협회 특별상을 받은 샘 킨은 <바이올리니스트의 엄지>라는 책에서 ‘파가니니가 엘레르스-당로스(Ehlers-Danlos) 증후군이라는 유전자 질환을 앓았을 것’으로 추론한다. 이 질환은 힘줄과 뼈대를 단단하게 하는 콜라겐의 결핍을 부른다. 콜라겐이 부족하면 모든 관절이 극도로 유연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질환은 관절통, 시각장애, 호흡곤란 등의 원인도 된다. 파가니니는 유전자 질환 때문에 재능과 명성을 얻었지만, 또한 그 때문에 목숨을 재촉했다고 저자는 판단한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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