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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보이지 않는 불평등 / 손아람

등록 2014-09-17 19:58수정 2014-09-17 23:09

손아람 작가
손아람 작가
편의점 프랜차이즈를 소유한 대기업이 서울 광장시장의 유명한 먹거리 ‘마약 김밥’의 모방 제품을 출시했다. 회사는 이 제품으로 새로운 소득원을 창출했고, 상인들은 돈 한푼 들이지 않고 시장 명물을 전국에 홍보할 수 있었다. 편의점과 재래시장의 구매층은 사실상 중첩되지 않는다. 윈윈 게임이다. 그래서 재래시장의 상인들은 흡족했을까? 그들은 격렬하게 항의했다. 대기업이 무임승차로 막대한 부당이득을 거두는 상황이 불공평하다고 느꼈던 것이다.

현대 경제학에서 이런 사례는 ‘최후통첩 게임’으로 이론화되어 있다. 정해진 돈을 ㄱ, ㄴ 두 사람이 분배한다. ㄱ은 자신이 가져갈 몫을 제안할 수 있고 ㄴ은 거부할 수 있다. 만약 ㄴ이 거부하면 두 사람 모두 한 푼도 받지 못한다. 고전 경제학에 따르면 ㄴ은 아무리 자기 몫이 적더라도 ㄱ의 제안을 받아들여야만 합리적이다. 없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로 다른 문화권의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ㄴ의 역할을 맡은 피실험자들은 분배가 과하게 불공평하면 예외 없이 제안을 거부했다. 이를 연구한 경제학자 허버트 긴티스는 인간을 유물론적 존재로 가정한 애덤 스미스 식 시장주의가 인간이 합리성보다 공평에 먼저 입각하는 이타적/징벌적 행위자임을 간과했다고 비판한다. 이천년을 넘게 잠자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이 깨어나는 대목이다. “공평은 정의에 속하는 것이나 때로는 정의보다 낫다. 공평이 무조건적인 정의보다 낫진 않지만, 적어도 정의에 대한 무조건적인 규정으로부터 생기는 과오보다는 낫다.”

노동자들의 장기 농성은 회사와 노동자 모두에게 손해를 안긴다. 회사는 생산성과 이미지에 타격을 입고, 농성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회복 불가능한 물질적, 정신적, 사회적 타격을 입는다. 하지만 쌍용차 복직 투쟁은 23명의 해고노동자가 숨져도 멈추지 않았다. 모두가 손해를 보는 노사 분쟁은 보이지 않는 손이 지배한다는 시장원리에 완벽하게 어긋난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일어난다. 왜? 공평의 감각이 시장 원리보다 근본적인 인간의 본성에 속하기 때문이다. 장기 농성자들은 단지 권리의 회복을 바랄 뿐 아니라, 파국을 감수하더라도 문제를 공론화해서 회사에 윤리적 징벌을 내리고 싶어한다.

시장주의는 기본적으로 무생물의 경제학이다. 곡예처럼 위태로운 비대칭 균형으로 시장이 유지될 수 있다고 계산하지만, 줄에서 떨어진 경제주체들의 감정과 본성을 계산하지 못한다. 세상의 불공평을 예측하지만, 불공평의 희생양들이 감히 어떤 모험을 감수할 수 있는지를 예측하지 못한다. 시장주의는 인간을 장기판의 졸로 다룬다. 인간은 장기판의 졸과 어떻게 다른가? 호락호락하게 희생양이 되어 판에서 물러나지 않는다. 역사를 돌아보라. 전략적 희생에 신물이 난 졸들이 시합의 규칙을 깨고 판을 엎어버린 기록들을.

시장주의자들의 주장을 들어보자. 참고 견디면 결국 다 해결될까? 부는 언젠가 확산될까? 우리 모두가 통장에 100억원씩을 저축하는 날이 오게 될까? 정말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누구나 100억원을 가지면 결국 누구의 살림도 나아지지 않는다. 그런 세상에서는 100억원으로 빵 한 조각도 살 수 없다. 부는 누군가 훨씬 가난할 때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만 가치를 지닌다. 그래서 자유시장은 누군가 가난해야만 작동한다. 자유시장의 가장 경이로운 마법은 기회의 평등을 불평등의 기회로 치환하는 기술이다. 정확히 말해, 자유시장이 불평등을 창조한 것은 아니다. 불평등이 자유시장을 발명해냈다.

손아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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