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한 연세대 교수·자살예방행동포럼 정책위원장
대한민국은 현재 국가적 차원의 자살예방 전략이 실종된 상태다. 2009년 시작된 제2차 자살예방종합대책이 2013년 종료된 뒤, 2014년 현재 1년 가까이 자살예방종합대책이 부재하다. 10년 이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 가운데 자살률 1위라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고려할 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개별적으로 행해지는 자살예방 활동은 다양하다. 최근 ‘자살예방의 날’ 행사에서 자살예방을 위한 범종교 협약식에 7대 종단이 참여하는 등 각계의 자살예방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고, 자살예방 사업의 컨트롤타워인 중앙자살예방센터와 11개의 광역자살예방센터, 233개의 지역자살예방센터가 고군분투하고 있다. 많은 자살예방 관련 민간단체가 자발적으로 헌신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만 400편 이상의 자살 관련 학술지 및 학위논문이 나왔다. 다양한 자살예방 행사도 열리고 있다.
문제는 여러 주체에 의한 개별적 노력을 국가적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통합하고 조직하며 중장기적 방향을 제시하는 국가적 수준의 자살예방종합대책이 2014년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살예방 국가전략이란 단순히 정부에 의해 주도되는 자살예방 활동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자살예방 활동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 25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의 자살률을 분석했을 때 자살예방 국가전략의 유무가 국가별 자살률에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었음을 여러 연구 결과가 보여주고 있다. 또한 필자의 연구를 비롯한 많은 연구의 결과들은, 효과적 자살예방을 위해 국가전략은 국가적 목표를 명확히 제시하고, 자살의 원인을 분명히 파악하며, 효과적으로 개입하고, 이에 대한 체계적 평가를 지속하는 것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유엔과 세계보건기구(WHO)는 각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자살 문제에 대처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국가 차원의 자살예방 전략의 중요성에 대해 세계보건기구의 가이드라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자살예방 국가전략은 자살 문제를 명확히 인식하도록 해준다. 둘째, 정부가 자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셋째, 자살예방의 다양한 측면을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하도록 해준다. 넷째, 자살예방과 관련된 관계자를 파악하고 각 부분에 적절한 책임을 부여하며 협력할 수 있도록 한다. 다섯째, 자살 문제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고 국민의 인식 개선을 돕는다. 여섯째, 문제를 점검하고 평가할 수 있는 체계를 제시하며 관계자의 책임성을 증진시킨다. 일곱째, 자살행동을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제1차 종합대책 시작 당시인 2004년 인구 10만명당 23.7명이었던 자살률이 2012년 28.1명으로 증가(통계청 자료)한 상황에서, 그동안의 자살예방종합대책의 효과에 의문을 가지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살예방 국가대책은 단시간에 효과를 입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장기간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대책의 존재 자체가 국가의 책임성을 나타낸다. 국민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지켜야 한다는 국가의 역할을 생각할 때 종합대책 부재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9월10일 세계 자살예방의 날을 지나며 거듭 강조하고자 한다. 자살 문제는 단순하게 해결될 수 없는 복잡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복잡성 때문에 여러 대책을 통합하며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주체는 정부밖에 없다. 앞선 1차와 2차 종합대책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선된 3차 종합대책을 시급히 내놓아, 정부가 자살 문제 해결을 위한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표명해야 한다. 자살대책은 정파와 이념을 넘어선 문제다.
송인한 연세대 교수·자살예방행동포럼 정책위원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