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수 정치부 선임기자
작전통제권 환수(전환)와 용산 미군기지 이전은 1987년 노태우 대통령 후보의 대선 공약이었다. 27년 전 일이니, 얼추 한 세대가 지났다. 그럼에도 아직 1994년 평시 작전통제권이 한국군에 이양된 지점에 20년 동안 멈춰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올해 초 한-미 정상회담에서 가닥을 잡은 전시 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재연기는 다음달 23일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매듭지어질 예정이다. 애초 내년 12월이었던 전환 시기가 2020년대 초반으로 늦춰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지만, 돌아가는 얘기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것 같다. 구체 시기는 한반도 안보 상황이나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한국군의 역량 등 ‘조건’과 연동해 정하는 쪽으로 논의가 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번에 전작권 전환이 2020년대 초반으로 연기될 것이란 전망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킬체인’과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의 구축 목표 시기가 2020년대 초반이라는 사실에서 나온다. 국방부는 “조건과 시기 모두 논의하고 있다”고 하지만, ‘조건’이 중요해지면 ‘언제 전환될지’는 부차적이 될 공산이 크다. 현재 개발 중인 킬체인과 미사일방어가 계획대로 추진될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계획대로 되더라도, 북한이 애써 갖춘 핵과 미사일이 무용지물이 되는 상황을 방관할 리도 만무하다. 북한도 다른 수단을 강구할 테니 남북간 ‘창과 방패’의 끝없는 경쟁이 이어질 공산이 크다. 게다가 다른 조건들은 또 어떻게 바뀔지 누가 알까. 어쩌면 작전통제권 환수는 기약없는 부도수표가 될 수도 있겠구나, 섣부른 생각도 든다.
사실 남북관계 악화는 전작권 전환에 악조건이 되기 십상이다. 긴장이 고조돼 안보 불안이 팽배해지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 ‘2015년 전시작전권 전환 차질 없이 준비’는 정부가 대북 강경노선을 밟을 때부터 파탄을 예고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신뢰 프로세스나 통일대박론에서 국제 공조를 통한 대북압박과 북한붕괴론이 어른거릴 때, 전작권 전환이 먼 훗날의 일이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반발하는 북한을 힘으로 억누를 압도적 군사적 우위만이 실질적인 전쟁 억제책인데 어떻게 전작권을 되찾아올 엄두를 내겠는가.
평화를 지키는 수단에 군사력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외교수단도 있고, 활발한 교류도 전쟁 가능성을 낮춘다. 두 나라 사이에 공유하는 이해관계가 넓어질수록 갈등이 전쟁으로 해결될 가능성은 낮아진다. 노무현 대통령의 전작권 전환 추진 배경에도 우호적인 남북관계의 밑그림이 있었고, 북핵 문제도 6자회담의 틀에서 해결을 모색하는 흐름이 있었다.
전작권 전환 재연기가 한미연합사의 용산 잔류와 미2사단 예하 210화력연대의 동두천 잔류 문제로 옮겨붙은 것은 또다른 유감이다. 미군의 요구가 전작권 전환 재연기와 맞물린 모양새여서, 이들 기지의 평택 이전이 무산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방부 주변에선 “연합사의 잔류는 기정사실이고 부지 면적을 얼마로 하느냐만 남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평택기지이전 사업은 주민들의 반대로 사업이 2년여 지연될 정도로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른 사업이다. 동두천은 이번 ‘미군 잔류 요청’ 소식에 반발 여론이 이는 등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한다. 국방부가 “미군기지 이전은 국민과의 약속대로 한다”고 다짐하고 있으니, 속단은 이를지 모른다. 그러나 10년 전 한-미 합의를 거쳐 국회 동의까지 받아 추진된 사업이 이제 와서 어디로 튈지, 왜 주민들이 촉각을 곧두세워야 하는 걸까.
박병수 정치부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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