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인간의 비합리성이 사회적 합리성의 최소조건이다. 주류경제학의 합리적 인간은 비용-편익 분석으로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이기적 행위자다. 주류경제학의 이 공리는 행동경제학의 등장으로 금가기 시작했다. 행동경제학은 감정적, 인지적, 사회적 요소들이 인간의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다. 주류경제학에서는 비합리적이고 비정상적으로 여겨지는 행동들이 행동경제학에서는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행위가 된다.
행동경제학은 심리학과 경제학의 융합 학문이다. 심리학의 여러 실험기법들이 도입되어 이론-중심적인 주류경제학과는 판이하게 다른 전통의 학문이 되었다. 인간 행동의 실험을 위해 게임이론에 기반한 다양한 게임들을 사용한다. 최후통첩게임(Ultimatum game)은 인간이 이기적인지 공정한지를 측정하는 실험이다. 서로 모르는 두 피험자가 짝을 이루고, 한 명은 제안자, 한 명은 반응자가 된다. 제안자는 소유한 자원의 일부를 반응자에게 분배해야 하고, 반응자는 제안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다. 거부할 경우 둘 다 아무것도 받지 못한다.
주류경제학은 제안된 금액을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 내시(Nash)균형, 즉 합리적 선택이라고 예측한다. 아무것도 받지 않는 것보단 이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응자의 대부분이 30퍼센트 이하의 제안을 거절했다. 더욱 기괴한 것은 제안자들도 대부분의 경우 30퍼센트 이상을 제안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 결과가 공정심의 발로가 아니라, 반응자의 거부권을 두려워한 이기심 때문이라는 반론도 가능하다.
이를 위해 고안된 실험이 독재자 게임(Dictator game)이다. 이 게임에서 반응자에겐 거부권이 없다. 즉, 최후통첩은 제안되는 것이 아니라 강요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제안자들은 여전히 상당한 금액을 제안했다. 이 결과는 국가, 민족, 나이, 성별을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심지어 인터넷을 통해 진행된 실험에서도 같은 결과가 도출된다. 행동경제학은 고전경제학의 합리성 공리를 실험적 증거로 무너뜨렸다. 실험이 도입되자, 이론은 시험되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과학에선 흔히 있는 일이다. 실험적 증거는 이론의 독재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정성은 인간의 본능이다.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분노는 사회적 동물 인간의 유전체에 각인된 진화의 흔적이다. 인간은 자신의 손실을 각오하면서까지 공평하지 않은 제안을 거절할 수 있다. 그것이 영장류 이상의 군집생활 동물에게 나타나는 사회적 의사결정 능력의 한 단면이다. 주류경제학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합리성의 기초를 비합리적 행위로 단정했었다. 하지만 진실은 그 반대다. 인간의 비합리성 때문에 거대한 사회가 가능할 수 있었다.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사회적 합리성을 지키려 했기에, 인류는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재창조할 수 있었다.
경제학자 최정규는 “모두가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인간들이라면 공공재는 존재할 수 없”으며, 공공재의 최고 형태인 “국가도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비합리성은 비정상이 아니다. 개인적 비합리성이 사회적으로는 합리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유지되려면 ‘상호적 인간’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이들은 서로 협력하고 사회를 무너뜨리려는 이들을 벌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의 권력은 이 ‘상호적 인간’들에게 주어져야만 한다. 주류경제학의 합리적 개인들에게 주어진 권력은 사회를 붕괴시키기 때문이다.
독재자 게임은 지속될 수 없다. 인간은 독재를 내버려 두지 않도록 진화해 왔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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