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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별기고] 가해자들의 땅에서… / 홍세화

등록 2014-10-09 19:06수정 2014-10-09 20:45

프랑스 여론조사에서 66%의 응답자가 가까운 장래에 사회폭발이 일어날 것을 예상했다. <르몽드> <르피가로> 등은 분석 기사와 함께 해법을 묻는 인터뷰를 실었다. 한국 언론에 익숙해진 나에게 선동, 음모 같은 단어들은 보이지 않았다. 위정자들이 막무가내로 오만해질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한국 현실과 견줘졌기 때문이다.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
4월16일로부터 어느새 반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 세월의 눈물겨운 외침에 세상은 모질게도 응답하지 않는다. 누구였던가, 이 시대는 나무를 노래할 수조차 없는 시대라고 했던 이는. 또 누구였던가, 똑같은 말을 거듭해야 하기에 죄스럽게 느껴야 하는 시대는 어떤 시대인지 물었던 이는. 바닥을 쳤다고 믿었던 세상은 끝을 알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데 나 또한 똑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계면쩍음과 함께 독자에 대한 송구스러움을 느끼는 게 언제부터이며, 그러면서 일상적인 고문은 사라지지 않았느냐고 자신을 위로한 게 또 언제부터인가. 최근에는 실제 망명이 아닌 사이버 망명을 했을 뿐이라고 덧붙이는 초라한 나 자신을 바라본다.

책도 잘 읽히지 않는 날들 속에서 기사 하나가 내 눈에 들어왔다. 지난 9월에 실시한 한 여론조사에서 66%의 응답자가 가까운 장래에 사회폭발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국민 세 사람 중 두 사람이 봉기와 같은 불온한 사태를 점치고 있는 나라는 물론 한국이 아니라 프랑스다. 한국에서는 그런 여론조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국가보안법에 저촉될 위험이 있는데, 대혁명 이래 20~30년을 주기로 혁명적 국면을 경험했던 나라, 68년 5월 혁명 이래 반세기 가까이 비교적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서 식자 중에서는 “프랑스가 권태에 빠졌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 나라이기에 가능한 일이겠다. 작년 11월에도 똑같은 여론조사가 있었는데 그때엔 76%의 응답자가 사회폭발의 가능성을 점쳤던 것에 비해 이번에 10% 줄었고 그 뒤 지금까지 사회폭발이 일어나지 않았으니 그들의 예상이 빗나갔음을 알 수 있는데, 이번 조사의 66% 응답자도 머지않아 자기들의 예상이 빗나갔음을 알게 될 가능성이 클 것이다. 희망사항으로 표현된 거품도 많이 담겨 있는 숫자이고 여론조사겠지만 여기에 그들의 역사가 투사되어 있음을 그 누구도 쉽게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가령 <레미제라블>을 쓴 서정시인 빅토르 위고의 “파리는 언제나 이(齒)를 드러내고 있다. 웃지 않으면 으르렁댄다”는 말은, <이방인>과 <페스트>의 작가 알베르 카뮈의 “우리는 사회불의보다는 차라리 무질서를 택한다”는 더욱 직설적인 말로 표현되었다. 최근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 토마 피케티 또한 “사회적 차별은 공익을 바탕으로 둘 때만 가능하다”는 1789년 대혁명 당시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 제1조를 <21세기 자본> 서장의 첫머리에 쓰고 있는데, 이 또한 그들의 역사가 반영된 것이라 하겠다. “사회불의보다는 차라리 무질서를 택한다.” 이 명제는 자유, 평등, 우애의 이념으로 인류 역사상 강제된 질서 중에서 가장 무섭고 질겼던 신분질서를 무너뜨린 그들 역사의 반영물이면서, 사회정의가 서 있는 곳에서는 기존 질서에 도전할 이유가 스스로 사라지는 반면에, 질서를 강조하는 사회에서는 항용 사회정의의 요구가 억압된다는 논리를 담고 있다. 이 논리는 사회정의보다 질서(그리고 안보) 이념이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 땅 곳곳에서 사회정의의 요구가 일상적으로 억압되고 있는 것으로 충분히 증명된다.

이 여론조사에 마뉘엘 발스 내무장관은 “해고와 공장폐쇄의 물결이 불러올 수 있는 운동과 연관된 사회의 내파 또는 폭발의 위험이 있다”고 응답했고, <르몽드>와 <르피가로>를 비롯한 언론 매체들은 분석 기사와 함께 지식인들을 초청하여 진단과 해법을 묻는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한국 언론에 충분히 익숙해진 나에게 선동이나 음모와 같은 단어나 사회부적응자, 불평불만자와 같은 용어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에 앞서 이런 여론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발표할 때 위정자들이 막무가내로 오만하거나 뻔뻔해질 수는 없겠다는 조건반사적 생각이 들었던 것은 자연스럽게 오늘의 한국 현실과 견줘졌기 때문이다. 두 나라 신문을 오가면서 사회의 층위의 차이, 그 사회를 구성하는 역사, 그 역사의 반영물이면서 역사의 실천자인 인간의 층위에 있어서 차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건 신문이 사회의 거울이기 때문이리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국민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는 게 국가의 일차적 소명이라고 할 때, 4·16 이후와 이전이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것은 이 소명에서 완전히 실패한 국가에 대한 총체적인 반성과 그에 따른 새로운 모색과 행동이 절실히 요청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은 오로지 세력관계에 충실할 뿐이다. 가령 공자님은 상(喪)을 당한 사람을 보면 나이가 어려도 예를 갖추었고 지나갈 때에도 조심스럽게 지나갔다고 한다. 그게 인간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자식을 잃은 비통함으로 4월16일 이래 모든 시간을 빼앗긴 부모들을 조롱하고 모욕을 주는 패륜적 사회상은 보이지 않는지 국가의 수장인 대통령은 기껏 본인에 대한 사이버상의 모독을 참을 수 없다고 일갈했고 검찰은 득달같이 사이버 모니터를 위한 대책회의를 소집했다. 기어이 검찰 관계자의 “카카오톡 법무팀이 혐의점을 판단해 집회와 관련된 부분만 경찰에 넘겼다”는 발언을 듣기에 이르렀다. 카카오톡 법무팀이 혐의점을 판단한다? 국가의 공적인 일을 민간에 외주 주는 일탈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찾을 수 없는 지경이다. 절망감이 다가오는 건 이웃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공감 능력을 찾기 어려운, 대통령에서부터 검찰을 거쳐 민간사업자에 이르기까지 인간으로서의 자존감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모든 사회 부문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기 때문일까, 프란치스코 교종이 잠깐 비쳐준 인간의 고결함과 섬세함 대신에 머리 좋은 자의 뻔뻔함과 그렇지 못한 자의 시시함만이 보이는 사회, 이 사회는 어디까지 추락할 것인가. 급기야 서북청년단을 재건하겠다는 움직임까지 나온다. 아무리 악한 사람도 죽을 때가 되면 순수해진다고 하는데, 과문의 탓인지 전쟁 전후의 학살을 명령한 자든, 그 명령에 따라 학살행위를 저지른 자든, 또 70, 80, 90년대 수사기관에서 일상적으로 저질러졌던 고문행위의 명령자든 실행자든, 그들 중 자신의 죽음 앞에서 참회의 목소리를 냈다는 사람을 찾기 어려운 땅, 오히려 회한이나 성찰, 그에 따른 눈물은 오로지 약자와 피해자의 몫이 되어버린 그런 땅, 전두환의 예가 보여주듯이 범죄자들은 사죄도 하지 않는데 먼저 용서부터 해야 하는, 일그러진 세력관계가 고착된 땅에 급기야 서북청년단을 재건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 땅 방방곡곡에서 헤아릴 수조차 없는,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은 불귀의 객이 되어 그 억울한 사정조차 말하지 못하는데 가해자들은 기고만장하게 잘 먹고 잘 사는 야만의 땅… 결국 사회 구성원들의 인성의 평균치가 가해자 쪽에 성큼 다가서 있는 게 아닌지 묻게 된 것이다. 인간의 이름으로 성찰을 요구하면 그들이 가진 힘을 바탕으로 적반하장의 역공에 나서는 막무가내의 아수라가 따로 없다고 하면 소심한 서생의 넋두리일 뿐이라고 할까.

요즘처럼 나 자신에게 정언명령을 내려야 하는 때가 없었던 듯싶다. 냉소나 무기력증에 빠지지 마라. 잘 못 쓰는 글이나마 계속 써야 할까? <르몽드>와 한 인터뷰에서 끝까지 민주주의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 토마 피케티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우리를 통치하는 자들을 위해 책을 쓰지 않는다. 어차피 그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나는 책을 읽는 사람들을 위해 책을 쓴다. 시민들, 노동조합원들, 모든 성향의 정치활동가들을 위해 쓴다.”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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