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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막연한 기후종말론을 넘어 ‘앤드루의 박사님’ 같은 사회가 필요해

등록 2022-11-03 09:00수정 2022-11-03 09:31

[제27차 기후총회 특별기고] 곽재식 소설가
늘어가는 집중호우에 반지하 주택은 기후변화에 취약한 거주지가 되었다.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온 기후변화는 계급과 계층, 선진국과 개도국의 불평등 문제를 드러낸다. 연합뉴스
늘어가는 집중호우에 반지하 주택은 기후변화에 취약한 거주지가 되었다.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온 기후변화는 계급과 계층, 선진국과 개도국의 불평등 문제를 드러낸다. 연합뉴스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가 6일부터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서 열린다. 선진국들이 기후변화의 역사적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지를 묻는 ‘기후정의’가 주요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2월 책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로 기후변화에 대한 통찰력 있는 해설을 들려준 곽재식 소설가가 관점의 주춧돌을 쌓는 데 도움될 글을 보냈다. 편집자주

1990년대 초에 한국에 방영되어 꽤 인기를 끌었던 캐나다의 텔레비전 시리즈 중에 ‘슈퍼소년 앤드루’라는 것이 있었다. 초능력 소년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야기였는데, 이 시리즈의 상징이라고 할 만한 장면이라면 제리 오코넬이 연기한 주인공이 하늘로 날아오면서 양손에 든 스프레이를 사용하는 장면이다. 우연히 하늘로 날아오르는 초능력을 가지기는 했지만 방향을 어떻게 바꾸는지, 공중에서 자세를 어떻게 잡는지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주인공은 스프레이가 내뿜는 힘을 이용해 조금씩 허공에서 움직인다.

그런데 이야기 초반에 주인공을 도와주는 역할을 맡은 옆집에 사는 박사 아저씨가 주인공이 사용하는 스프레이를 압축 공기를 사용하는 신제품으로 바꿔주는 장면이 나온다. 왜냐하면 원래 주인공이 사용하던 제품은 염화불화탄소(CFC)라는 물질을 이용해서 안에 든 것을 내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염화불화탄소는 당시 국제적으로 큰 문제가 되어 대표적인 오염물질로 취급되던 기체다. 이런 상황을 알고 보면, 이 장면은 1990년대 초에 오존층 파괴 문제가 전 세계 각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던 역사를 드러내는 선명한 흔적이다.

전 세계에서 염화불화탄소라는 물질을 퇴출하는 쪽으로 국제사회가 함께 움직인 것은 1989년 몬트리올의정서라는 제목으로 국제적인 협의가 이뤄지면서다. 염화불화탄소를 사용하면 국제적인 제재가 가해질 뿐만 아니라, 염화불화탄소를 사용한 제품을 만든다고 해도 주요 선진국들이 사지를 않겠다고 하면서, 각국의 기업들은 장사를 계속하기 위해서 염화불화탄소가 아니라 대체물질을 사용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때문에 염화불화탄소는 빠르게 사라질 수 있었다.

주식투자자들이 기후변화에 민감한 이유 그래서 요즘 에어컨이나 냉장고는 염화불화탄소의 대체물질로 등장한 수소불화탄소(HFC)라는 물질을 사용하고 있다. 아마 에어컨을 점검하러 온 사람이 “가스를 다시 채워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을 한 번쯤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 가스가 대체로 수소불화탄소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요즘은 다시 그 수소불화탄소 물질 중에서도 일부가 환경에 문제가 된다고 해서 금지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번에는 오존층 파괴가 아니라 지구온난화, 곧 기후변화 문제다. 기후변화의 원인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이산화탄소보다도 같은 무게에서 훨씬 강력한 기후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관찰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수소불화탄소를 대체할 수 있는 물질을 선진국에서 먼저 개발해 두었다. 따라서 기후변화 문제를 막기 위해 수소불화탄소 규제가 강화되면 에어컨, 냉장고 제조 회사들은 대체물질을 개발해 둔 선진국에 비싼 값을 내고 물질을 사서 쓸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선진국과 강대국들은 환경문제를 근거로 어떤 제품을 팔 수 있고, 어떤 제품이 팔리면 안 되는지를 뜻대로 결정하고 있다. 세계 경제는 거기에 맞춰 흘러갈 수밖에 없다.

그린피스와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400여 개 단체로 구성된 ‘9월기후정의행동’이 주최한 기후정의행진 참가자들이 24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기후위기를 경고하며 도로 위에 드러눕는 다이-인(Die-In) 시위를 하고 있다.
그린피스와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400여 개 단체로 구성된 ‘9월기후정의행동’이 주최한 기후정의행진 참가자들이 24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기후위기를 경고하며 도로 위에 드러눕는 다이-인(Die-In) 시위를 하고 있다.

특히 환경문제 중에서도 여러 나라가 힘을 합해서 해결해야만 하는 기후변화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 나라 간의 경제문제, 산업문제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미세먼지나 에티오피아의 물 부족 문제에 유럽이 큰 관심을 가지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한국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에는 유럽 여러 나라가 제재를 가하자는 생각을 품는다. 이산화탄소는 전 세계에 퍼져 지구 전체의 기후를 조금씩 바꾸기 때문에, 유럽도 피해를 본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는 환경문제, 환경운동이라고 하면 그저 자연적인 것을 좋아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어, 기업의 활동이나 경제개발은 환경을 지키는 것과 반대의 길이라고만 생각하던 시대도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런 환경운동 역시 가치가 있다고 믿으며, 자연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탐욕을 줄여나가자는 생각은 현대사회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세상이 점점 더 빠르게 바뀌어 나가는 것은 그 이상의 현상이다. 여러 나라가 환경기술을 개발해 경제구조를 개편하려는 전략이 기후변화의 시대를 만나 더욱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5년 전만 해도, 자연보호 단체 회원들이 기후변화 소식에 가장 민감한 편이었지만, 요즘은 주식투자 하는 사람들이 기후변화 소식에 가장 빠른 시대다.

나는 방금 한국에서 가장 큰 자동차 회사의 주식 시가총액을 살펴보았다. 오랫동안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이고, 한국 산업, 나아가 한국 사회를 상징한다고 할만한 큰 회사다. 그런데 이 회사의 시가총액은 미국 대표 전기차 제조회사 시가총액의 20분의 1도 안 된다. 현재 전기차 산업은 기후변화 대응에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미국 주식시장, 미국 경제의 중요한 축이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정치인들과 정책 담당자들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전 세계에 전기차를 더 많이 퍼뜨려야 한다”고 활발히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 주장대로 세계 각국에 전기차를 많이 퍼뜨리기 위한 제도가 실시된다면, 기후변화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되면서 동시에 미국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착하게 산다고 해결될 문제일까? 한동안 기후변화가 심해지면 남극과 북극의 얼음이 녹고 바닷물이 불어나 온 세상이 홍수에 잠겨 멸망한다는 이야기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나는 이러한 기후변화 종말론이 중요한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시대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줄거리는 그리스 로마 신화나 길가메시 신화에 나오는 친숙한 옛이야기와 닮아 쉽게 와 닿는다.

그렇지만 나는 요즘은 굳이 기후변화 종말론이 필요하지는 않은 시대라고 본다. 종말론이 아니더라도 기후변화의 문제는 이미 너무 우리 가까이에 다가와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후변화 종말론이 여러 다른 종말론과 비슷하게 보이는 바람에 현실감이 떨어진다고 느끼게 되는 역효과도 없지 않은 것 같다. 무엇보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신화 속의 징벌과는 성격이 다르다. 기후변화의 피해는 죄인이 아니라 사회 취약계층을 향한다. 홍수 때문에 고통을 받을 저지대에 사는 주민, 가뭄으로 산불 피해를 겪거나 농사를 망치는 농민, 흉년으로 곡물 가격이 높아지면 굶주리며 생명의 위협을 받아야 하는 저소득국 국민과 빈곤층이 피해를 입는다.

곽재식 소설가
곽재식 소설가

나는 2022년 정도면 막연한 종말론을 넘어서 현실로 눈을 돌릴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할 때 기후변화 때문에 벌어지는 구체적인 문제와 대처 방법은 더 가깝게 눈에 들어 온다. 그냥 착하게, 경건하게, 죄를 짓지 않고 산다고 저절로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 되지는 않는다.

전통적으로 환경문제는 정부가 개인이나 기업이 오염을 일으킬 만한 어떤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통제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곤 했다. 그렇지만 기후변화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이런 넓고 구체적인 영향을 받아들인다면 정부와 공동체가 해야 하는 일이 달라져야 한다는 사실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취약계층을 어떻게 지원할지, 새로운 산업구조로 나아가기 위해 어떻게 경쟁력을 키우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지에 대해 도움을 주는 일을, 말하자면 앤드루에게 압축 공기 방식의 새 스프레이를 건네주는 옆집 박사님 같은 역할을 사회가 해줄 수 있어야 한다.

곽재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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