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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주목경쟁의 시대 / 박권일

등록 2014-10-13 18:44

박권일 칼럼니스트
박권일 칼럼니스트
백과전서파의 대표적 문필가였던 디드로가 활약한 시기는 18세기다. 당시는 파리와 런던에서 카페가 융성하던 때로, 지식인들은 파리의 카페 ‘르 프로코프’(le procope)와 ‘카페 드 라 레장스’(caf<00E9> de la r<00E9>gence) 같은 곳에서 혁명과 정치와 예술에 대해 열정적으로 대화했다. 금전적 대가도 없는 일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송두리째 바치는 것을 본 디드로는 이런 말을 남긴다. “카페는 신뢰를 얻는 게 보상인 극장이다.”

그럼 웹과 모바일을 통해 수다를 떠는 21세기 한국은 무엇이 보상인 극장일까? 그것은 ‘주목’과 ‘관심’이 아닐까 한다. 사회를 더 낫게 바꾸려는 토론보다는 주목과 관심을 받기 위한 주목경쟁(attention struggle)이 훨씬 치열해 보인다. 물론 타인의 관심을 요청하는 건 나쁜 일도 희귀한 일도 아니다. 우리는 종종 “여러분 주목해 주세요!”라고 말한다. 일단 사람들의 이목을 획득한 다음 비로소 본론에 들어간다. 즉, 주목의 추구는 일반적으로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재확인하기 위해 굳이 주목경쟁 개념을 발명할 까닭은 없다. 문제는 과거의 주목추구 양상과 지금의 그것이 현저히 달라졌다는 데 있다.

오늘날 주목을 추구하는 행위, 특히 웹에서 타인의 관심을 끄는 행위는 상당수가 그 자체로 목적이다. 심지어 주목받는다는 사실이 일종의 물신(fetish)이 되는 경향마저 관찰된다. 자신의 일상을 불특정다수에게 전시하거나, 선정적 언동 또는 일탈적 행동을 보이면서 타인의 시선에 점차 중독되어가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다. 동시에 그런 사람들을 “관심병자”나 “관심종자”라 부르며 경멸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몇몇 경영학자와 사회학자들은 정보화 사회의 주목경제(attention economy)를 연구해왔다. 주목받는 것이 기업의 생존이나 수익 창출, 나아가서 사회생활 전반에서 핵심적인 변수가 되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본래 주목경제는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인지심리학자 허버트 사이먼이 1970년대에 발표한 ‘정보 풍요’ 착상에서 영감을 받은 개념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정보를 소비한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게도 수용자의 관심을 소비하는 것이다. 정보가 넘쳐날수록 관심은 부족해진다.” 요컨대 정보과잉사회로 갈수록, 주목이라는 판돈(stakes)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격화될 수밖에 없다.

주목경쟁이란 말에서 헤겔의 ‘인정투쟁’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인정투쟁은 주체로 인정받으려는 욕구를 충족하려는 투쟁이자 상호인정 상태에 이르기 위한 투쟁이다. 그러나 인정투쟁과 주목경쟁은 다르며, 주목경쟁을 인정투쟁의 변종 혹은 사회적 인정의 예비단계로 규정할 수도 없다. 획득한 관심이 경멸이나 혐오가 아니라 인정과 호감이면 좋겠지만 그건 부차적이다. 중요한 건 내가 가져올 수 있는 ‘트래픽’이 어느 정도냐다. 인정투쟁이 질적 경쟁이라면 주목경쟁은 양적 경쟁이라 할 수 있다.

주목경쟁은 일베를 표층에서 부추긴 동기이기도 했다. 우파가 아닌 좌파를 공격하는 것은 좌파가 실제로 더 부정의하고 비도덕해서가 아니었다. 단지 그쪽이 더 많은 관심, 더 많은 효능감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일베는 이념을 위해 주목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주목을 위해 이념을 추구한다. 그들은 이념갈등이 빚은 정치범이 아니라 주목경쟁이 낳은 쾌락범이다. 정치의 과잉으로 보이는 우리 시대가 실은 한없이 ‘반정치’에 가까운 이유도 여기서 멀지 않다.

박권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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