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유엔총회 기간에 북한 인권 관련 고위급회의를 주재한 것을 시발로 북 인권문제가 국내외 쟁점이 되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박근혜 대통령은 유엔총회 기조연설, 싱크탱크 대표 간담회, 국무회의, 국군의 날 기념식 등에서 관련 발언을 연일 쏟아내면서 ‘대북정책의 핵심’ 정책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들은 북한인권법을 제정했는데 우리는 10년 동안 국회에 계류 중이라며 법 제정을 촉구하고는 국제사회와 함께 공동보조를 주문했다. 이에 덩달아 탈북단체연합회는 곧 서울에 들어설 ‘유엔북한인권현장사무소’에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처럼 ‘북 인권조형물’을 세운다면서 모금운동을 펼친다 한다. 또 ‘한국교회언론회’도 한국 교회가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면서 북한인권법 제정을 촉구했다. 앞으로 이런 움직임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북도 연일 막말로 대응하고 있다.
물론 인권은 보편적 규범이기에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까지 미국이 행한 인권정치 또는 인권관련법은 쿠바, 이라크, 이란 등 미국의 패권적 지배와 침략을 위한 악의적 수단으로 등장해왔고, 더욱이 2004년의 북한인권법은 보편규범인 인권을 표방했지만 실제는 북한 정권·체제 붕괴 책략에 다름 아니다. 이러니 이번에도 그 진정성에 의심이 갈 수밖에 없고 덩달아 박수를 칠 수만은 없다.
이참에 우리 자신에 자문해야 한다. 도대체 인권을 알기나 하고 북한 인권 운운하느냐고.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제반적 조건을 부여받을 권리라고 인권을 쉬운 말로 규정할 수 있을 테다. 이에 따라 1966년 국제인권장전은 인권 범주를 크게 시민·정치권(B규약)과 사회·경제·문화권(A규약)으로 대별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인권규약은 원천적 결함을 갖고 있다. 곧 평화생명권을 기본 범주로 설정하고 있지 못한 점이다. 비록 B규약 6조가 생명권을 다루지만 개인생명권에 국한되고 전쟁에 의한 수백만, 수천만의 집단생명권 침해는 빠져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인간에게 목숨보다 더 귀중한 것은 없다. 가장 나쁜 범죄는 살인죄고, 가장 가혹한 형벌은 살인범이고, 이 살인 행위를 대량으로 저지르는 것이 전쟁이다. 그러므로 전쟁을 막고 평화를 확보해 집단 생명권을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인권의 핵심 범주가 되어야 한다.
인권이 지구촌에서 제대로 보편성과 정당성을 가지려면 평화생명권을 핵으로, 먹고살 수 있는 생존권(A규약)과 자유·시민권(B규약)을 병행하는 포괄·균형적 인권 개념이 정립돼야 한다. B규약만을 신봉하는 미국식이나 평화생명권을 빠뜨린 유엔식 인권은 나 홀로 인권이다.
이 재구성된 인권을 바탕으로 한반도는 평화체제 구축으로 남북 주민이 평화생명권을 누리게 하고,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폐기와 경제봉쇄 해제로 북이 생존권 개선과 확보에 나서도록 하고, 대북 외적 군사위협 제거와 인권공론화 등 자유권 압박을 통해 북 스스로 자유시민권을 개선시키는 자정력을 키우도록 해야 할 것이다.
북의 자유·시민권 문제는 북 내부 문제에서 연유된 점이 가장 크다. 그렇지만 동시에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에도 기인한다. 이 점에서 남북 대결 구도를 견지한 이명박·박근혜 정부 역시 일단의 책임이 있다. 이참에 우리 모두 진정으로 북의 인권, 남쪽의 인권, 더 나아가 한반도 주민 전체의 총체적 인권 신장을 위해 기본 발상부터 바꿔야 할 것이다.
전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