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아람 작가
지방의 철도역. 여자 화장실은 “남자 미화원이 청소중입니다”라는 팻말이 걸린 채 닫혀 있고, 남자 화장실은 여자 미화원이 청소하는 중이며, 장애인 화장실 앞에는 여자 손님들이 줄을 서 있다. 작업반장을 찾아 사정을 물었다. 그의 하소연을 여기 그대로 적는다. 파견업체에서 배정한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데다 여성 노동자는 딱 한 명뿐이라, 일을 주어진 시간 안에 끝내려면 어쩔 수가 없다는 것. 역사에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전했다. 그런데 담당자는 코레일 본사로부터 다단계 위탁된 시설관리의 최종 파견업체가 어디인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앞으로도 이 역의 장애인 화장실은 창백한 안색으로 발을 동동 구르는 여자 손님들로 붐빌 전망이다. 간접고용 시대의 진풍경이다.
현재 국내 대기업과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네명당 한명이 간접고용 노동자다. 사업자 입장에서 간접고용은 명백한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비용 절감 효과가 크다. 평균적으로 간접고용 노동자의 임금은 정규직 노동자의 절반에 불과하고 노동 강도는 더 높다. 반값을 받고, 더 많이 일하는 인력. 간접고용의 확대는 고삐 풀린 시장의 필연적 귀결이다. 간접고용이란 파견업체 혹은 용역업체를 통해 사람을 ‘빌려오는’ 방식이므로 거칠게 말하면 노동의 다단계 판매와 같다. 그렇다면 이는 시장에 대한 상식적 이해와 상충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마진이 붙는 유통 단계가 늘어나면 재화의 최종 가격이 오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인력의 경우에만 오히려 단가가 낮아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간접고용이 노동을 하청하는 동시에 불법과 착취를 하청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대형 사업자는 간접 고용을 통해 업무를 위탁함과 동시에 피고용인에 대한 법적 책임까지 떠넘긴다. 무수하게 점조직화된 위탁업체의 노동환경을 빠짐없이 법으로 규율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위탁업자들은 대형 사업자가 감히 대놓고 저지르기 어려운 ‘결단’을 대행해주는 대가로 중간 수익을 얻는다. 불법의 중매이자 착취의 삼투인 셈이다. 간접고용 행태의 본질은 흔히 ‘빵셔틀’이라 불리는 속어로 잘 드러난다. “500원 줄 테니까 빵이랑 우유 사고 거스름돈 남겨와!” 외관상으로 빵셔틀은 구매를 위탁하는 법률상의 구두 계약일 뿐이다. 하지만 누군가 정말로 500원만 받아 빵과 우유를 사고 거스름돈까지 남기려 한다면, 어떤 짓을 저지르게 되겠는가?
사측은 언제나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고용 사실과 법적 책임을 부정한다. 그래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쟁의는 사측을 협상 테이블에 앉히는 것 자체가 요원한 목표가 된다. 투쟁이 길어지면 결국 노동자 가운데 누군가 앞장서 세상의 이목을 사로잡는 극단적 방식을 택한다. 자결. 비극은 이것이 단지 한 인간의 숭고한 죽음이 아니라 시장가치를 지니는 죽음이라는 점이다. 죽음이 여론을 환기하면 비로소 본사 차원의 대응이 시작되므로. 바로 우리 사회가 비용 절감을 위해 치르게 된 보이지 않는 비용이다. 산 자를 위한 목숨값이다.
“도움이 되길 바란다” “저를 바칩니다” 삼성전자서비스에서 자결한 3명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유서에 각각 등장하는 문장이다.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해 쓰인 유서들은 역설적으로 그 어떤 글귀보다 과거를 닮았다.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이 문장으로 유서를 맺은 전태일이 몸을 불살라 자결한 때는 1970년이다. 44년 전이다. 이제 이 질문에 대답해 보라. 세상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손아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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