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영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노자는 “세상에 물보다 유약한 것은 없다. 그러나 강한 것을 공략하는 데 물보다 나은 것이 없다”며 물의 특징을 유약하면서도 강하다고 주장했다. 해수욕장 모래사장을 밟으면 발자국이 깊이 생길 정도로 연약하지만 파도와 모래가 만나는 경계에서는 표면장력 때문에 바닥이 단단해진다. 또한 지하수 개발 때 암반 깊은 곳을 시추하다가 수맥을 만나면 강한 수압으로 인해 물이 높이 솟아오른다.
땅속의 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하며 지하수는 도시를 지탱하는 거대한 기둥 구실을 해왔다. 지하수가 땅속 깊은 곳으로 사라진 사막 위에는 안전한 도시를 건설하기 어렵다. 최근 이슈화된 싱크홀은 이런 지하수 기둥이 약해지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대규모 개발 때 지하수 유출과 지하수 이용량 증가로 지하수위가 낮아지면 지하수가 차지했던 공간에 크고 작은 동공이 생기게 되어 도시 건축물, 도로, 상하수관을 비롯한 지하 매설물을 지탱해오던 지반이 약해진다.
싱크홀이 자주 발생하는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수십년 동안 축적된 자료를 분석한 결과, 1년 중 지하수위가 가장 낮은 5월에 싱크홀 발생 건수가 최대치를 기록했고, 가뭄 이후 폭우 때도 싱크홀이 많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최대 가뭄이 있었던 해에 싱크홀이 가장 많이 발생하여 지하수위와 싱크홀이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정부는 싱크홀 방지 대책으로 대규모 공사 관리 강화, 노후 하수관 교체, 지하공간 통합지도 작성을 주요 방향으로 설정하고 있다. 세 가지 사업 모두 싱크홀 방지를 위한 중요한 시책임에 틀림없으나 이들을 묶을 수 있는 하나의 목표가 없다는 점이 아쉽다. 정책 목표를 지하수위 관리로 정하면 세부 시책들이 상호 연계성과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 대규모 공사 때 지하수위가 교란되지 않도록 지침을 만들거나, 노후 하수관 우선교체순위 결정 때, 혹은 지하공간 통합지도로부터 위험지역 분류기준 마련 때 지하수위를 지표로 활용할 수 있다.
노후 하수관 교체가 실질적인 대책으로 떠오르고 있는데 하수관 노후 정도와 싱크홀 발생의 연관성에 대해서 좀더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2010년 이후 서울시에서 모두 3119건의 도로함몰이 발생했고 이 중 85%가 하수관 누수 때문이었다고 한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송파구에서만 866건이 발생하여 전체의 27.8%를 차지하고 있으나 송파구의 하수관이 다른 자치구에 비해 노후화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송파구는 모래, 자갈, 점토로 구성된 충적층이 두꺼워 지반이 약한 것이 싱크홀 발생의 주된 원인이다. 연약지반은 지하수위가 더 떨어지지 않게 관리한 이후 하수관을 교체해야 싱크홀 발생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
지질은 변하지 않는 고정변수인 반면 지하수는 노력에 따라 관리가 가능하다. 싱크홀 발생 위험지역으로 분류된 곳의 지하수위는 최소한 현재 수준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좋다. 신규 개발사업 추진 때 개발 이전의 지하수위를 유지하기 위해 빗물이 최대한 지하로 침투하도록 저영향개발 기법을 적용하고, 석촌호수처럼 지하수 함양 기능을 가지는 시설을 설치하고, 개발사업 때 발생하는 지하수 유출과 대규모 관정을 사용하는 지하수 이용도 관리해야 한다. 플로리다주에서는 잔디에 물을 주는 요일까지 정하여 지하수를 관리하고 있다.
건강을 위해 혈압이나 혈당 수치를 관리하는 것처럼 지하수위를 관리해야 도시의 기초가 튼튼해지고 국민이 안전한 삶을 누릴 수 있다.
이기영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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