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원섭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
오는 25일은 홍범도 장군께서 이역만리 카자흐스탄에서 서거하신 지 71주년이 되는 날이다. 옛 소련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연해주의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했는데, 그곳에서 서거한 것이다. 내년이면 광복 70주년이 되는데 조국 광복을 위하여 평생을 바친 장군의 유해를 아직도 조국으로 모시지 못한 심정은 비통할 뿐이다.
홍범도 장군은 국가로부터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한 머슴 출신이었지만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전 생애를 바친 분이다. 일제가 명성황후를 시해하여 발단이 된 을미의병에서부터 의병활동을 시작하여 의병을 독립군으로 발전시킨 주역이다. 특히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최초의 승전을 거둔 봉오동전투를 주도하여 독립군의 사기를 높였고 국민들에게는 독립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었다. 김좌진 장군과 함께한 청산리전투는 세계 피압박민족 해방투쟁사에서 우뚝한 성과로 빛나고 있다. 홍범도 장군은 탁월한 지도력과 치밀한 유격전술로 병력과 장비가 우세한 일본군을 섬멸하여 ‘날으는 홍범도 장군’이라는 별명을 얻은 ‘전설적인 영웅’이었다. 정부에서는 장군의 공로를 인정하여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지만, 파란만장한 생애와 독립운동 업적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지 못하였다.
한때 러시아 홍군에 편입되었고 모스크바 크레믈궁에서 항일지도자 이동휘와 함께 레닌과 회담하고 독립자금을 받았다고 하여 공산주의자로 분류하여 외면하였다. 청산리전투를 왜곡하여 그의 공로를 폄하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 만주지역의 무장투쟁을 학계에서 연구하고, 청산리전투에 대한 상세한 연구가 이뤄지면서 홍범도 장군이 청산리전투를 주도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독립군 부대의 생존과 동지들의 안전을 위해 홍군에 편입하고 공산당에도 입당했지만, 결코 공산주의자는 아니며 진정한 민족주의자라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2005년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가 창립되어 추모식을 하게 되었고, 작년에는 카자흐스탄 현지에서 고려인 단체와 정부 대표가 함께 참여하는 뜻깊은 추모행사를 열었다.
홍범도 장군의 71주기 추모식을 맞아 못내 아쉬운 점은 우리가 그의 업적에 상응하는 예우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카자흐스탄에서 서거했을 때 그곳 고려인들은 비록 공동묘지이지만 장군의 묘역을 아담하고 품위있게 조성하여 추모 공간을 마련하였다. 카자흐스탄 소비에트 당국에서는 ‘홍범도 거리’를 조성하여 장군의 업적을 찬양하였다. 중국 봉오동전투 현장에는 투먼시 당국에서 ‘봉오골 전투 전승지’라는 기념비를 세워 조선족은 물론 중국인들도 장군을 존경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나라에는 홍범도 장군을 추모하고 그분의 애국정신을 계승하려는 아무런 기념물이 없어 부끄럽기만 하다. 이제라도 우리 정부에서 장군에 대한 추모사업은 물론 장군의 유해를 봉환하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를 위하여 헌신한 애국자들은 국가가 끝까지 보호하고 합당한 예우를 하여 국민적인 사표로 삼고 있다. 장군은 아직도 이역만리에 외롭게 방치되어 있으니 국가적인 수치이며 국민적인 불명예다. 아직도 장군의 업적을 폄하했던 시대착오적인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국민 모두를 역사적인 죄인으로 만들고 있다.
장군은 남북한에서 함께 존경하고 있는 독립운동가로, 앞으로 남북통일시대에 대비하여 우리 입장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유해 봉환은 적극 추진해야 할 과제다.
황원섭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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