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소 홍천해밀학교 교장
경기도에서 시행하고 있는 9시 등교는 고강도 학습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학생들에게 여유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조조수업이니 0교시 수업이니 해서 지금도 많은 학생들이 새벽잠을 설치고 허겁지겁 등교를 해야 한다. 자발적 근면과 학습이 아닌 강제적 측면이 훨씬 많은 관행이다. 아침밥을 거르다시피 하고 집을 나서는 자녀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학부모들 역시 마음 편할 리 없다. 사회적 지위 획득을 위해 끝없는 경쟁을 해야 하는 제자들과 함께 생활해야 하는 선생님들이라고 마음 편하겠는가.
현재 경기도 초중고 대부분의 학교가 9시 등교를 시행하고 있으며, 별문제가 없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다. 학교마다 융통성을 발휘해 정규수업은 9시에 시작하되, 일찍 등교한 학생들을 위해 독서나 운동 프로그램을 운영해 반대와 우려를 불식한다.
내년에는 9시 등교가 더 많은 지역에서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바람직한 일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정규수업 후 진행되는 보충수업 등에서 예전과는 다르게 참여 여부를 학생들의 선택에 맡기고 있는데 이 역시 만시지탄의 감이 있으나 환영할 일이다.
두발과 복장을 자율화한 학교를 통해 학생들의 자율성을 존중해주고, 학생들의 선택권을 확대할수록 학교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높아진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학교 유연화 작업은 이른바 혁신학교를 중심으로 적지 않은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혁신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려는 학부모가 늘고 주변의 아파트값까지 덩달아 상승한다는 것은, 일련의 개혁조처가 학생 학부모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음을 입증한다.
그런데 많은 이들에게 환영받는 그런 유연한 발상과 조처가 왜 그동안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작은 개선조차 위험시되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9시 등교와 강제 보충수업이 없어지면 학생과 교사가 행복해지고 학부모들은 만족할 것인가.
사실 모든 학생이 새벽에 나와 밤늦게까지 공부를 해야만 했던 것은 배움에 대한 순수한 열의 때문이 아니었다. 안전장치가 거의 없는 살벌한 경쟁사회에서, 사회적 지위획득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서였다.
좋은 성적을 유지해야 일류대학 진학의 가능성이 커지고, 그래야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 학생 때의 감당하기 힘든 학습노동은 당연한 것이었고 그에 따른 어려움을 감내하는 것은 통과의례처럼 여겨졌다. 사회적 생존을 위해 경쟁적으로 학습량을 늘려왔다. 지역마다 외국어고, 국제고, 과학고, 자사고를 만들고 학교마다 기숙사를 지어 등하교 시간까지 절약해서 이를 공부에 집중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공부에 열정을 쏟고 아름다운 청춘의 자유와 방황을 유예한다 해도 모두가 일류대에 진학하는 것은 아니다. 열심을 다해서 공부하고 대학 문을 두드려도 선택지는 한정된다. 1등급은 수능 응시자의 4%로 제한되니, 열심을 다해도 만족할 만한 성취로 이어지지 않는다. 또 대학입시에 성공해도 대졸자 취업률은 50% 안팎에 불과하다. 양질의 일자리를 따진다면 현실은 더 팍팍해진다.
9시 등교를 비롯한 일련의 개선 조처들은 반갑고 환영할 만하다. 꽉 막힌 숨통을 트는 긴급처방의 효과는 확실하다. 그러나 학교에서의 학습량 줄이기가 학교 밖, 사교육시장으로 이동할 개연성이 적지 않다.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온갖 차별과 불이익에 시달려야 하고, 일류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취업조차 어려운, 한국 사회의 차별과 불평등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학교 개혁은 한계가 분명하다. 학력에 관계없이 인간다운 삶을 기획하고 큰 차별 없는 일상을 꾸릴 수 있다면, 학교의 심각하고 많은 문제들이 해소될 것이다. 안타깝지만, 9시 등교만으로 학교가 당장 행복해질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윤영소 홍천해밀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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