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9일 낮 국회에서 시정연설과 여야 지도부와의 회담을 마친 뒤 김무성 대표 등 새누리당 지도부와 함께 국회 본청을 나설 때 세월호 유가족들이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14.10.29 / 공동 취재 사진
[한겨레 프리즘]
나는 ‘싸가지론자’였다. ‘진보든 보수든 인간을 판단하는 최종 심급은 싸가지’라고 생각해왔다. 정치적 성향보다도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듯한 자극적인 태도,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더 문제라고 생각했다. 최근 이른바 ‘진보세력’에게 싸가지와 관련한 질문이 쏠리고 있다. 지난여름 강준만 교수가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책을 펴낸 것이 계기인 듯한데, 가을 내내 정치권 안팎에서 갑론을박이 쏟아지고 있다. 진중권씨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진보의 문제점은 싸가지가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싸가지가 있어도 그 좋은 싸가지로 대중에게 할 말이 없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설가 장정일씨는 10월30일치 <한겨레>에 “‘바른말을 착하게 하자’는 강 교수의 싸가지론은 경청할 데가 있다”면서도 “지은이의 싸가지론을 확장하면 ‘바른말 착하게’를 훨씬 상회하는 ‘이미지정치’에 가닿는다. ‘싸가지=이미지’를 진보정치의 활로라고 얘기하시니 수긍하기 어렵다”고 썼다.
그동안 ‘싸가지 없는 인사’들을 여럿 배출해온 야당 내부에선 강 교수의 싸가지론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다. 싸가지를 갖추지 않으면 야당이 합리적 중도층의 지지를 얻을 수 없고, 집권할 수도 없다는 얘기다. 나는 평소 문재인 의원에 대해 ‘바른말을 너무 착한 말로만 하다 보니 임팩트가 없다’고 아쉬워했는데, 그조차 최근 당내 특강을 하면서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얘기가 있다. 이미지나 행태에서 품격있는 정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인사들이 진보냐는 물음은 일단 제쳐두자. 동료 의원들의 면전에서 말의 총질을 서슴지 않는 야당과, 아무리 맘에 안 들어도 수그려야 할 땐 조용히 수그리는 여당을 비교하면서, 나는 ‘야당이 더 싸가지가 없다’고 생각하긴 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내 싸가지론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싸가지 없는 한국의 진보세력에게 ‘당신은 싸가지가 있냐’고 묻는 건 당연하지만, 과연 한국의 보수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하는 게 온당하냐는 의심이었다.
닷새 전 박근혜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하러 국회에 왔을 때였다. 그가 빨간 카펫을 밟으며 국회 경내로 들어서자, 전날 밤부터 국회에서 대통령을 기다렸던 세월호 유족들이 “살려달라”고 외쳤다. 늘어선 경호원들 사이로 분명 그 외침이 들렸을 텐데, 대통령은 쌩하니 지나쳤다. 이후 문희상 새정치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이 “유족들을 보듬어달라”고 말했으나 대통령은 묵묵부답이었다고 한다. 대통령이 떠난 뒤 이번엔 국회를 나서는 김무성 대표에게 한 유족이 매달렸다. 김 대표는 “특별법 제정을 도와달라”며 무릎을 꿇은 그를 놔두고 “예, 예, 예” 하면서 차 문을 닫았다. 당황스러워서 미처 손을 잡고 일으킬 생각을 못 했을 수도 있지만, 김 대표 자신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도와달라”며 거리에서 간절하게 읍소한 경험이 있지 않던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억울한 사람들을 남겨두고 제 갈 길 가는 이들을 보면서, 나는 그들에게 결여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진보에게 결여돼 있다는 싸가지는 과도한 공격성, 배려없음 등의 문제다. 그러니 우아한 자세를 잃지 않는 이들에게 똑같이 싸가지 문제를 들이대기 힘들다. 품위있는 태도를 지닌 대통령, ‘대인배’로 알려져 있는 김 대표에게 없는 건 행태의 싸가지가 아니다. 서러움으로 아우성치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 억울함·흥분·분노로 가득찬 이들에 대한 공감이 결핍된 것이다. 그건 싸가지 유무보다 더 근본적이고 심각한 문제다. 나는 이제 싸가지론을 맹신하지 않게 됐다.
이유주현 정치부 기자 edigna@hani.co.kr
지난 9월10일 전북 전주 전북대학교 연구실에서 강준만 교수가 자신이 펴낸 책 〈싸가지 없는 진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이유주현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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