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품격’이라는 말이 있다. 말과 행동, 딛고 있는 현실과 내세우는 구호가 서로 다르면 말의 품격은 떨어진다. 물가가 오르면 화폐가치가 떨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중국 춘추시대 노나라의 자로는 스승 공자에게 “정치를 하게 된다면 무엇부터 시작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공자는 “꼭 이름을 바로 세우는 것(正名)이다”라고 답했다. 공자의 정명론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말의 품격을 제대로 갖추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질과 어긋나는 허울만을 추구하는 경향이나 명분을 실질로 오인하는 경우에는 정명론에 반한다.
박근혜 정부에서 품격 훼손이 가장 심한 말은 ‘창조’가 아닐까 싶다. 알맹이 없이 창조경제를 부르짖더니 웬만한 정책에는 다 ‘창조’란 수식어를 붙인다. 박 대통령이 올해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한 강연에서 창조경제라는 표현을 수십번 썼다고 하여 창조경제론의 세계적 전도사가 됐다는, 얼토당토않은 주장도 나왔다. 창조경제 실현 방안이라며 ‘창조경제타운 건설’과 같은 재래식 토건정책을 되풀이한다. 얼마 전에는 국산 훈련기를 개조한 전투기에 ‘창조 국방의 나래’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취임 뒤에는 ‘경기 침체’라는 말이 남발되는 경향이다. 박 대통령은 며칠 전 국회 시정연설에서 ‘경제 위기론’까지 들고나왔다. 객관적인 경제 상황에 비추어 보면 ‘말의 인플레이션’이다. 경기 침체(디플레이션)란, 물가가 떨어지는 가운데 국내총생산(GDP)까지 줄어드는 상태를 말한다. 지금 한국 경제의 상황은 일시적 ‘경기 후퇴(리세션)’로 볼 수 있을지언정 침체 국면은 아니다.
경제에 대한 지나친 비관론은 정부의 경기 부양 의지를 내세우는 데는 효과적일지 모른다. 일종의 정치적 ‘공포 마케팅’이다. 그러나 현실과 맞지 않는 비관적 언사를 남발하면 정책 신뢰를 떨어뜨린다. 또 기업과 가계 등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더욱 위축시킬 뿐이다.
박순빈 논설위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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