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모욕당하는 삶 / 이라영

등록 2014-11-05 18:32

이라영 집필노동자
이라영 집필노동자
‘절망에 관하여’를 열흘 전부터 반복적으로 듣고 있다. 이십대 후반의 신해철이 부른 노래다. 듣다 보면 절망보다는 패기가 느껴진다. “그냥 가보는 거야~!”

그래도 될까. 우리는 어디까지 가볼 수 있을까.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내가 좋아하는 노래 ‘타타타’의 가사다. 하지만 산다는 건 수지맞는 장사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알몸으로 태어나서 마이너스 통장과 대출 빚만 남기고 죽을 수도 있다.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는 과연 가져야 하는지 망설여진다는 내 말에 친구가 나름 용기를 주려 했다. “자기 먹을 건 다 가지고 태어난다잖아.” 전혀 와닿지 않는다. 이제 자기 먹을 것을 가지고 태어나는 부류는 정해져 있다.

“파도 파도 빚밖에 안 나오는 집”이라며 제 엄마에게 악다구니를 치던 드라마 속 ‘악녀’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빚을 남길 부모를 버리고 돈 많은 집의 양녀로 들어가 상속자가 되겠다는 야망에 돌을 던지기보다 연민이 먼저 찾아온다. 그 정도로 이미 우리의 삶은 모욕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왔다! 장보리>에서 어린 연민정으로 나온 아역배우는 작년에 한 종편에서 방영된 <그녀의 신화>라는 드라마에도 출연한 적이 있다. 비슷한 역이라 한번에 알아봤다. 각각 다른 드라마에서 이 배우는 극 중 엄마를 향해 같은 대사를 던진다. “차라리 고아였으면 좋겠어!” 그리고 실제 고아 행세를 하며 친부모를 등진 채 돈 많은 양부모의 자식이 된다.

이런 설정이 ‘막장’이라고 하지만 실은 현실의 극단적 반영이다. 과거에는 가난한 애인을 버리고 돈 많은 배우자를 찾는 배신자들이 드라마에 등장했다면, 이제는 가난한 부모를 버리고 돈 많은 부모를 찾아 상속자가 되려는 패륜아가 극을 이끌어간다. 심지어 부모조차 자식의 패륜 행위에 어느 정도 동참한다. 개천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용이 되기는커녕 생존 자체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야망의 세월은 지났으며 상속의 시대가 진행 중이다. 개인의 능력이 출신 배경을 뛰어넘을 수 없는 사회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산다는 건, 12살 어린아이가 유서를 쓰고 ‘엄마를 따라가는’ 선택을 하게 할 만큼 비싼 비용을 치러야 하는 고역이다. 삶은 비싸지만 인간은 싸구려가 되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잃고 싶지 않은 이들은 끝내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빼먹지 않고 세상을 떠난다. 그 와중에 삶의 마지막 비용까지 지불한다.

로자 룩셈부르크에게 세계는 ‘모욕당하는 사람들’과 ‘주인들’로 나누어졌다. 모욕당하는 이들은 점점 늘어나는 중이며 주인들은 갈수록 악랄해지고 있다. 더 비참한 현실은, 주인이 되기 위해 모욕의 가해자로 너도나도 참여하는 모습이다. 갈수록 급격하게 사회는 서열을 세우고, 살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밟으려 애쓴다. ‘너도 살고 나도 살자’가 아니라 ‘내가 못사니까 너도 못살아야 한다’는 식이다. 그래서 공무원은 ‘철밥통’이고 대기업 노조는 ‘귀족노조’라고 지탄받는다. 공무원 연금 개혁과 복지 축소는 우리 모두의 연금과 복지가 연결된 문제다. 삶의 질의 하향평준화가 평등은 아니다.

낮은 출산율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출산 기피에 대한 어리석은 착각은 이를 ‘여성 문제’로 보는 시각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아이는 여자 혼자 낳지 않는다. 기피의 주체는 대한민국의 ‘대단한’ 여성이 아니다. 제 삶의 모욕도 감당하기 힘든 이 척박한 세상에 굳이 자식을 낳아 모욕의 대물림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삶의 대가가 이토록 비싸지 않다면, 선택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이라영 집필노동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최상목의 자기합리화…‘석열이형’에게 미안해서 [1월6일 뉴스뷰리핑] 1.

최상목의 자기합리화…‘석열이형’에게 미안해서 [1월6일 뉴스뷰리핑]

경호처를 대통령으로부터 분리해야 한다 [권태호 칼럼] 2.

경호처를 대통령으로부터 분리해야 한다 [권태호 칼럼]

[사설] 탄핵심판에서 내란죄 제외, 전혀 논쟁할 일 아니다 3.

[사설] 탄핵심판에서 내란죄 제외, 전혀 논쟁할 일 아니다

[사설] ‘법 위의 윤석열’ 응원한다며 관저 달려간 국힘 의원들 4.

[사설] ‘법 위의 윤석열’ 응원한다며 관저 달려간 국힘 의원들

‘개같이 뛰고 있다’…쿠팡은, 국가는 무얼 했나 [6411의 목소리] 5.

‘개같이 뛰고 있다’…쿠팡은, 국가는 무얼 했나 [6411의 목소리]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