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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죽음의 철학 / 이유진

등록 2014-11-09 18:35

이유진 문화부 기자
이유진 문화부 기자
가을이어서일까. 오랜만에 실존철학 관련 서적들이 여러권 출간됐다. 덕분에 책도 읽고 철학자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심각한 논의를 접하며 떠오른 질문은 이것이었다. 죽지 않는 불멸도, 반드시 죽어야만 하는 필멸도 모두 저주라면 우리더러 대체 어쩌란 걸까? 실은 우문이다. 고민할 것도 없이 누구나 죽는다. 예외가 없다.

최근 한 60대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어르신의 마지막이 화제가 됐다. 그는 퇴거 위기에 놓이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신의 시신을 수습할 사람들에겐 ‘돈봉투’를 남기고 이렇게 써두었다. “고맙습니다. 국밥이나 한 그릇 하시죠. 개의치 마시고.” 위엄 있는 표현과 정갈한 필체를 보고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왜 이 점잖은 분이 생을 마칠 결심을 해야만 했을까.

홀로 죽는 인간은 누구나 고독사한다. 이 죽음은 고독사라기보다 자본주의와 국가가 공모한 폭력과 야만에 맞선 ‘강요된 존엄사’로 기록돼야 한다. 절박함 속에서 삶의 엄숙한 양식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뒤 이 수밖에 없다고 결론 내렸을 것이다. 어쩌면 그가 생각한 가장 기품있는 마지막 선택이었을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인격적인 생의 마감을 기획하며 끝까지 민폐 끼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회복이 불가능한데도 연명치료를 받으며 기나긴 임종기를 보낸다. 이런 사람들이 전국에 1000명도 넘는다고 한다. 어느 쪽도 ‘해피 엔딩’이 아니다. 건강한 더 많은 사람들은 죽음이 아예 오지 않을 것처럼 여기며 살아간다.

죽음을 유예하려는 욕망은 하나의 ‘안일함’이자 생의 마지막 가장 중요한 기회를 놓치는 것이라고 일찍이 철학자들은 설파한 바 있다. 최근 발간된 <초인수업>(박찬국)을 보면, 니체는 ‘더 이상 긍지를 갖고 살 수 없을 때 당당하게 죽는 것’을 강조했다. ‘삶에 대한 총결산이 가능한 죽음’을 권했던 것이다. 자살 미화라기보다 존엄한 삶에 대한 열렬한 찬양이다.

니체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웰 다잉’을 고민한다면, 죽음에 대해 깊이 사유할 만큼 정신력이 고양되어 있어야 한다. 이는 철학에 바탕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사유를 집요하게 밀고 나갈 지식 생산 시스템마저 위태롭다. 프랑스에서는 자크 데리다 등이 만든 ‘국제철학학교’가 정부 지원금 중단 때문에 폐지 위기에 놓여 세계 인문학계가 떠들썩하다. 국내에서도 대학들이 돈을 좇아 철학과를 비롯한 인문계열 학과를 통폐합하기 시작한 지 오래다. 삶과 죽음, 세계에 대한 깊은 사유를 진작할 지식인들이 대학 안에서 재생산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인류의 재앙이다. 속세에서 모두가 외면하고픈 죽음을 성찰할 기회는 더더욱 없다. 웰 다잉은 엄격한 철학적 고민을 거쳐 존엄한 죽음으로 나아가는 행위여야 하지만 사보험시장 속의 상품으로 전락해가고 있다.

기개에 찬 논객이자 삶과 죽음을 고민하는 가사로 울림을 주었던 가수 신해철씨는 평소 생을 끝내는 준비가 되었을 때 기꺼이 떠나고 싶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의료사고든 아니든 그의 사인에 대한 논란 자체가 삶부터 죽음까지 인간을 강하게 결박하는 의료화·시장화에 대한 폭로다. 그는 “인격도 신분도 품위도 지식도 이젠 돈만이 결정하고 말해주는 거니…”라고 비판적으로 노래한 바 있다. 반면 이런 가사도 썼다.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의 생이 끝나 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우리 모두 언젠가는 궁극의 질문을 받게 된다. 하지만 세속의 질문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이유진 문화부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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