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도지사의 야바위 / 박권일

등록 2014-11-10 18:38

박권일 칼럼니스트
박권일 칼럼니스트
“국고가 거덜나고 있는데 지금 무상파티만 하고 있을 것인가!”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무상급식 예산 중단을 선언하자 온통 아수라장이다. 소신이야 어쨌든 지역에 큰 영향을 끼치는 행정수장이 정책 방향을 갑자기 틀면서 주민의 삶을 흔들어대는 건, 이념을 떠나 칭찬받을 일은 아니다. 더구나 2년 전 홍준표 지사는 흡사 ‘복지 전도사’였다. 2012년 12월20일 도지사 취임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무상급식과 노인 틀니사업 같은 복지예산이 삭감되는 일이 없도록 재정 건전화 특별대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 2013년 1월7일 보도자료엔 “예산이 부족해도 복지예산을 감축해서는 안 되고 도민과의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무상급식에 관한 그의 주장과 근거들이 사실인 양 유통되면서, 복지논쟁의 전제 내지 프레임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홍 지사의 논리를 요약하면 복지정책에 대한 전면부정이라기보다 시기상조론에 가깝다. “담세율이 북유럽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데 북유럽 수준으로 무상급식하자는 것이냐”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국가 간 비교 자료에서 조세부담은 주로 조세부담률과 국민부담률이라는 두 지표로 측정된다. 조세부담률은 국내총생산에서 조세(국세와 지방세)가 차지하는 비율이다. 201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1.4%이고 덴마크 38.2%, 스웨덴 42.9%, 핀란드 43.1%이다. 북유럽 3국 평균이 41.4%이므로, 한국 조세부담률은 최소한 북유럽 3국 수치의 절반 이상이다. 조세부담률보다 중요한 지표가 국민부담률이다. 국세와 지방세 등 조세부담뿐 아니라 사회보장기여금 부담까지 고려해야 실제 국민들의 부담 수준을 더 정확히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2012년 국민부담률은 44.3%, 한국은 26.8%였다. 이 경우에도 한국의 비율은 스웨덴 수치의 절반을 훌쩍 넘어선다. 즉, 조세부담률로 보든 국민부담률로 보든 “3분의 1”이라는 비율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역사적 사실들과 통계 수치들은 홍 지사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처럼 보인다. 스웨덴이 복지국가 체제를 완성시켜가던 1965년, 국민부담률은 33.3%였다. 지금 한국의 국민부담률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지만 경제규모는 현재 한국보다 훨씬 영세했던 시기다. 스웨덴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어선 때는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참고로 스웨덴이 중학교까지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한 때는 1946년이었다. 쉽게 말하자. 그 옛날 스웨덴에 비한다면, 한국은 지금 당장 중학교까지 무상급식을 확대해도 될 정도로 돈 많은 나라다.

그런데 왜 국고가 거덜났다 아우성일까. 간단하다. 세금을 엉뚱한 데 허비했거나, 세금을 충분히 걷지 못했거나, 혹은 그 두 가지 사태가 동시에 벌어진 탓이다. 4대강으로 대표되는 광기 어린 토건사업과 천문학적 혈세를 허공에 뿌린 자원외교 같은, 이전 정권에서 지금 정권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삽질’에도 불구하고 국고가 풍족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부자 세금 깎아주기 바쁘던 정권은 막상 재정 압박이 심각해지니 담뱃값이다 뭐다 하며 허리띠를 졸라매다 못해 허리가 잘릴 지경인 서민들의 골수까지 빨아먹으려 달려든다. 급기야 초등학생 급식비를 깎겠다고 나섰다. 강물 막아놓고 마른 우물 긁는 격이요, 자식 밥값 뺏어 아비 도박비 주겠다는 소리다. 도대체, 국고가 거덜나고 지방세수가 바닥난 사태의 일차적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다름 아닌 정권, 여당, 중앙정부가 아닌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아이들 점심값에 분개하는 어느 도지사의 야바위를 보며 참을 수 없이 욕지기가 치미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박권일 칼럼니스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최상목의 자기합리화…‘석열이형’에게 미안해서 [1월6일 뉴스뷰리핑] 1.

최상목의 자기합리화…‘석열이형’에게 미안해서 [1월6일 뉴스뷰리핑]

[사설] 탄핵심판에서 내란죄 제외, 전혀 논쟁할 일 아니다 2.

[사설] 탄핵심판에서 내란죄 제외, 전혀 논쟁할 일 아니다

[사설] ‘법 위의 윤석열’ 응원한다며 관저 달려간 국힘 의원들 3.

[사설] ‘법 위의 윤석열’ 응원한다며 관저 달려간 국힘 의원들

경호처를 대통령으로부터 분리해야 한다 [권태호 칼럼] 4.

경호처를 대통령으로부터 분리해야 한다 [권태호 칼럼]

‘개같이 뛰고 있다’…쿠팡은, 국가는 무얼 했나 [6411의 목소리] 5.

‘개같이 뛰고 있다’…쿠팡은, 국가는 무얼 했나 [6411의 목소리]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