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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생각하고, 불복종하라 / 손아람

등록 2014-11-12 18:27

손아람 작가
손아람 작가
“외압은 없었네. 그렇게는 나를 움직일 수 없어. 나는 국가에 그런 식으로 복종하지 않아. 내 복종은 더 깊은 곳에서부터 작동하지. 이 나라는 내 종교일세.” 온갖 음모로 점철된 듯 보였던 사건의 진실이 검사의 고백으로 드러난다. 소설 <소수의견>의 마지막 장면이다. 자기인용은 민망한 일이지만, 지금 자발적 복종을 이야기함에 있어 더 적당한 텍스트는 없는 듯하다.

정치적 이슈를 다룬 영화들의 개봉이 지연 혹은 포기되는 일이 잦아졌다. 개발 단계의 영화가 투자처를 찾지 못하거나, 아예 정치적 해석의 여지가 없도록 자기검열을 하는 움직임마저 감지된다. 반면 우산 운동을 지지하여 퇴출된 홍콩의 영화인들은 흔들림이 없다. 퇴출령 선포 당시까지도 영화를 촬영하던 저우룬파(주윤발)는 “돈을 적게 벌면 되지”라며 웃었다고 한다. 홍콩의 정치적 상황이 더 낙관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절박함과 자기확신의 차이다. 여러 사건을 거치며 가시적인 소득을 거두지 못한 우리 사회의 시민 투쟁은 피로감과 함께 ‘결국 무엇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패배주의에 짓눌렸다. 민주주의의 후퇴가 쉽게 논해진다. 그런데 누가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는가? 세상을 남김없이 장악한 절대권력이 등장해서 입을 꽉 틀어막고 손발을 꽁꽁 묶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에 따르면 전체주의 사회란 처벌이 집행되지 않는 곳이다. 이런 사회는 지배 규범의 공포가 너무 강력해서 처벌 없이도 구성원을 길들이고 권리를 자비로 대치한다. 복종은 습관으로 체화된다. 습관은 선택으로 가장된 의무이고, 시민의 사회적 정체성을 정의하며, 곧 법이 된다. 이것은 “생각하고, 복종하라!”는 칸트적 공식으로 번역된다. 예로 카카오톡 감청 논란 이후 벌어진 망명 사태는 잘못된 전략까지는 아니더라도 명백하게 불길한 징후다. 감시권력에 대한 분노가 기업 불매운동으로 전화된 사실은 권력의 절대성이 은연중에 받아들여졌음을 드러낸다. 카카오톡과 텔레그램, 정말로 선택지는 그뿐인가? 정치적 감청이 자유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라면, 그에 맞선 행동은 오히려 감청 대상인 정치적 금기를 자유로이 범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참신한 전략, 지능적인 패러디, 수준 높은 유머감각으로 무장한 운동들은 기본적인 동력을 소실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바로 ‘저항’ 말이다. 만약 욕설이 법으로 금지되고 감시의 대상이 된다면, 나는 전에 없던 욕설을 새로이 발명해내는 게 저항의 방식이 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저항이란 오로지 금기라는 이유로 금기를 발화하는 것이다. 저항이란 불복종이다.

지배 규범의 부당성은 작위적 전복과 불복종으로써만 주장될 수 있다. 어떤 이들이 불복종이 불법의 선동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불법은 민주주의의 대립항도 아니고 양립 불가능한 개념도 아니다. 불법이란 무엇인가? 용산에서 재로 산화한 생존의 외침이었다. 세월호 유족들이 점거한 광장이었다. 가장 오래된 불법은 바로 민주주의다. 기억나는가? 우리는 그것을 불법으로 쟁취했다. 자유의 가장 큰 위협은 반자유가 아니라 자유를 포기할 자유를 행사하는 것이다. 자유의 지점이 강요된 자유를 부분적인 자유로 받아들인다면 부자유란 존재할 수조차 없는 개념이 되고 만다.

‘도그마’는 교리의 절대성을 뜻하지만 이제 종교에 대해서는 잘 쓰이지 않는 말이 됐다. 인간이 새로운 신을 기다려 영접해서? 반대로 신의 절대성에 대한 믿음을 거부하고 자유를 얻었기 때문이다. 의심이 신을 우주에서 몰아냈다. 그러므로 생각하고, 불복종하라. 우리가 맞닥뜨린 도그마는 절대적인가? 정말로 도저히 대항할 수 없는가? 우리를 굴복시키는 것은 막강한 힘인가, 아니면 상상 속에서 키워온 공포와 절망인가?

손아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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