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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결혼식 ‘치킨게임’ 어떻게 멈출까? / 이현숙

등록 2014-11-16 18:37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가을은 결혼의 계절이다. 어김없이 날아드는 청첩장이지만, 인생의 새 출발을 기약하는 낯익은 얼굴들을 보면 괜스레 설렘과 기대, 희망 같은 것이 시나브로 피어난다. 그런데 결혼식장에 가보면 결혼식 문화는 20여년 전과 달라진 게 거의 없다. 축의금을 낸 하객들은 신랑신부에게 눈도장을 찍는다. 주례사, 축가, 기념촬영 뒤 서둘러 식사를 하고 다음 결혼식을 위해 종종걸음을 치며 예식장을 빠져나온다. 세상은 참 많이 변했는데 우리의 결혼식 문화는 여전하게 신기할 정도다.

2년 전부터 한 언론사가 ‘작은 결혼식’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그간의 보여주기식 겉치레 예식으로 모두가 힘들기에 거품을 걷어내고 조촐한 결혼식 문화로 바꾸자는 것이다. 처음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여성가족부와 시민단체들도 결혼식 문화 바꾸기에 나섰다. 여성부, 생활개혁실천협의회는 ‘1000명의 작은 결혼식 릴레이 약속’을 추진했다.

캠페인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캠페인의 반향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런 캠페인이 있느냐는 듯이 대형 결혼컨설팅업체가 중심이 된 턴키방식(결혼식에 필요한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을 한꺼번에 맡는 방식)이 결혼시장에서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실제 요즘 결혼식 비용은 20~30대 젊은이가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액수다. 턴키방식의 비용은 평균 200만원대이고, 일반 호텔에서 하객 300명의 식사를 겸한 결혼식 비용은 2000만원 이상이다. 여기에 꽃장식, 술과 음료 비용이 추가로 든다.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은 결혼식과 결혼비용에 대한 의미 있는 기사를 실었다. 경제학자인 휴고 미알론과 앤드루 프랜시스 미국 에머리대 교수가 ‘결혼비용과 결혼지속 기간 사이의 상관관계’를 연구했다. 이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결혼식 비용이 적게 든 결혼일수록 이혼 가능성이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두 교수는 마치 결혼비용을 많이 들일수록 상대를 더 사랑하는 것이거나 성공적인 결혼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선전하는 광고가 이번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고 한다. 고액을 지출하는 결혼이 긍정적인 결혼생활을 가져다준다는 웨딩업계의 말은 일리가 없다는 게 그들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

그렇다면 체면을 위해 빚을 내서라도 남들 하는 만큼의 결혼식을 치르는 ‘치킨게임’은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 얼마 전 다녀온 후배의 결혼식에서 작은 희망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서울시청 소담홀에서 열린 결혼식은 신랑신부가 부모 도움 없이 자신들이 모은 돈으로 직접 준비해 열었다. 협동조합 팟캐스트를 함께 진행하면서 결혼까지 하게 된 이들은 인생 동반자로서 자신들이 주인인 결혼식을 하고 싶었다. 주례도 축가도 없이 신랑신부가 직접 토크쇼처럼 편안하고 소박하게 진행했다. 신부는 화려한 웨딩드레스 대신 평소에도 입을 수 있는 하얀 원피스를 입었고, 결혼식장은 일회용 꽃 대신 화분으로 꾸며졌다. 이 화분들은 식이 끝난 뒤 하객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리고 사회적 기업이 하는 유기농 뷔페가 하객들을 위한 식단으로 차려졌다. 신랑신부의 꼼꼼한 배려가 따뜻함으로 다가왔다.

“아이들이 처음 결혼식 계획을 얘기했을 때 정말 당황스러웠어요. 빚 안 내고 자기들 형편에 맞춰 하겠다는 생각은 기특했죠. 하지만 사돈이나 주위 사람들 눈치가 보여 많이 망설였어요. 이해해 주고 애들 뜻 받아준 사돈께 감사해요.” 태어나 처음 마이크를 잡았다는 신부 어머니의 인사말이다. 결혼시장의 치킨게임은 신랑신부, 양가 부모가 함께 변해야 멈출 수 있다.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h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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