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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베네치아의 3박 4일…고 구본준 기자를 생각하며

등록 2014-11-23 18:42

이창곤 편집국 부국장·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이창곤 편집국 부국장·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1. 8번 부두: 세 번째 방문이었다. 이 도시를 사랑한 그도 세 번째였다. 그의 방문은 죽음의 길이 됐고, 나의 방문은 그 죽음을 수습하는 길이 됐다. 지지난주, 물의 도시에서 3박4일을 보냈다. 기가 막힌 시간이었고, 때로는 비현실적 공간이기도 했다. 첫날 어스름 무렵, 마르코폴로 공항을 나와 걷기를 5분여, 부두가 나타났다. 8이란 숫자 앞에 멈췄다. 수상택시에 몸을 실었다. 제법 넓은 택시 안이었건만, 숨이 컥컥 막혔고, 진땀이 배었다. 운전기사가 실내등을 끄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고 어둠과 침묵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택시는 미끄러지듯 아드리아해의 물결을 가르며 도심을 향해 진입했다. 창문 너머로 수로표시용 목재 기둥이 기괴한 모습으로 잇달아 나타났고,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도시는 더 요염해진 듯했다. 하지만 그처럼 이 도시를 사랑할 수는, 결코 없을 것이었다.

#2. 병원 복도: 이른 아침 호텔을 나왔다. 그를 ‘보기’ 위해서다. 길은 좁았고 자주 꺾였다. 가이드를 따라 말없이 걸었다. 작은 다리를 건너자 고풍스런 건물이 앞을 막는다. 안으로 드니 의사 가운을 입은 이들이 보인다. 다시 작은 마당이 나왔고, 문을 열고 들어서니 복도 가장자리에 두 개의 목관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안치실이다. 그가 우리를 맞이할 준비를 다할 때까지 기다리다 복도 끝을 바라보는데, 문이 빼꼼히 열린다. 문틈 사이로 오가는 배들, 운하다. 안치실은 뜻밖에 운하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이의 주검을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기다리던 이들은 이 복도에서 저 문 사이에 내비친 물길과 그 위를 바삐 오가는 배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했을까?

#3. 차가운 손: 그는 목관 속에서 우리를 맞았다. “자고 있잖아!”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골덴 바지에 스웨터? 익숙한 그의 패션이었다. 가슴을 쓰다듬다 불끈 쥐고 있는 손이 보였다. 왜 주먹을? 그 손을 잡았다. 아니 대어 보았다. 차가웠다. 그 기운이 온몸을 휘감는다. 갑작스런 흉통과 함께 절로 목이 메었다. 비보를 처음 들었을 때도, 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그의 집을 찾았을 때도, 현지에서 상황 설명을 들었을 때도 실감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었는데, 차가움은 비현실을 현실로 바꾸었고, 현실은 폐부를 깊이 베었다.

#4. 종탑: 사흘째다. 서둘러 이 도시를 뜨고 싶었다. 그러나 비행 일정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긴 하루, 어떻게 보내야 하나? 유족은 몸을 학대하기 위해 도시의 골목골목을 샅샅이 훑었고, 나는 그가 가고자 했지만 가지 못했던 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의 종탑, ‘그날’ 아침 그가 꼭 올라가 조망하고 싶어했던 곳이다. 그곳에 올랐다. 대운하 위로 쉼없이 관광객을 실어나르는 수상버스와 수상택시, 예스런 비잔틴 양식의 건물과 드높은 가옥들, 그 사이로 난 미로 같은 골목길, 그리고 섬들과 섬들을 잇대어 도시를 형성케 한 크고 작은 다리들. 도시는 그가 푹 빠져 다시 찾을 만큼 아름다웠다. 한컷 한컷 담아 눈에 꾹꾹 넣었다. 마치 전할 수 있기라도 한 듯….

#5. B5-253: 22일 경기의 한 공원묘원. 엊그제 봉안된 그를 다시 만났다. 비가 내렸다. 비 젖은 꽃이 놓인 그의 묘 앞, B5-253이란 낯선 표지가 그를 가리키고 있다. 그 위에 놓일 묘석엔 “세상이 궁금한 유쾌한 글쟁이, 이곳에 집 짓다”란 글귀가 새겨지기로 했다. “다시 보자, 본본.”

이창곤 편집국 부국장·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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