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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무상커피와 과학 / 김우재

등록 2014-11-24 18:39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창의적 과학 연구의 배후에 커피가 있다. 커피의 각성제 역할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이 꼭 커피일 필요도 없다.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기 위해, 또 마시며 하는 행위에 해답이 있다. 커피는 사람들을 모이고 대화하게 만든다. 창의적 연구에 자유로운 대화와 토론은 필수적이다. 커피는 자연스럽게 그런 대화를 유도한다.

매년 2천만원을 투자해 연구자들에게 공짜 커피를 제공하는 연구소가 있다. 연구소 곳곳엔 질 좋은 원두커피가 놓여 있고, 근처엔 편안한 소파와 테이블이 보인다. 실험실 간의 물리적 거리는 커피를 마시는 공간 덕에 사라진다. 각자의 연구를 공유하고, 우연한 협업이 가능해진다. 각자 커피를 타기 위해 시간과 돈을 낭비하느니, 차라리 무상 커피가 창의성과 협업을 위해 훨씬 효율적이라는 철학이 배어 있는 것이다. 워싱턴 디시 인근, 자넬리아 연구소의 일상적 풍경이다.

자넬리아 연구소는 초파리 유전학자 제리 루빈의 주도로 2006년 문을 열었다. 루빈은 창의적 연구가 수행되었던 여러 연구소들을 관찰했고, 연구소의 문화가 창의성의 핵심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루빈은 그 문화를 결정하는 요인을 두 가지로 요약했는데 첫째는 연구비의 조달 경로, 둘째는 연구자들의 경력을 관리하는 구조였다. 이 두 요소만 잘 관리할 수 있다면, 뛰어난 인재들이 자연스레 모여들고, 그들이 자유롭게 상호작용할 수 있다면, 멋진 일이 일어날 것이다. 분자생물학의 혁명을 이끌었던 영국 케임브리지대 분자생물학연구소(LMB)와 정보통신의 혁명을 이끌었던 벨 연구소가 그런 구조와 문화를 지니고 있었다.

성공적인 연구소들은 6명 이하의 소그룹으로 구성되는 경향이 있다. 과학사에서 대부분의 혁신은 창의적인 소그룹에서 일어났다. 정년은 보장하지 않는다. 대신 연구자들은 외부 연구비를 수주하기 위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모든 연구는 하워드 휴스 의학연구소의 자금으로 지원된다. 내부 연구비가 중요한 이유는 정부나 기업 주도형 연구가 창의적이지만 고위험 연구를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외부 연구비는 연구 주제를 고정시키고 유연성을 잃게 만든다. 그런 조건에서 창의적 연구는 불가능하다.

5년마다 계약을 연장할 수 있다. 재계약을 위한 평가는 논문 수 등의 기계적 잣대가 아니라, 외부 심사위원과 내부 동료들의 질적 평가를 거친다. 즉, 그룹 리더는 그들이 협업에 기여한 정도, 다른 과학자들에게 해준 조언들, 개인적 성취들의 종합으로 평가받는다. 정년 보장을 하지 않는 것이 장애라고 생각하겠지만, 유명한 과학자들이 정년을 버리고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다. 그들이 꿈꾸던 연구의 기회가 제공되기 때문이다. 루빈은 또한 물리적 거리가 학제간 연구의 실질적 걸림돌임을 간파했다. 자넬리아에선 생물학자와 컴퓨터 과학자, 공학자가 한 지붕 아래서 일한다.

연구자들의 문화가 창의적 연구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 문화는 새마을운동 따위의 후진국형 정신력 싸움이 아니라, 경제적/물리적 하부구조를 통해 창발된다. 자넬리아 연구소의 구조와 문화는 한국 정부출연연구소의 극단에 있다. 기초과학의 창의적 연구를 진흥하겠다고 만든 기초과학연구원조차 관료주의로 골치를 앓고 있다고 들었다. 이곳의 공무원들이 벌써부터 논문 실적으로 연구자들을 압박하고 있다. 관료적 완고함이 과학 연구의 가장 큰 적이다. 그곳엔 무상 커피가 없기 때문이다.

맥스 퍼루츠는 엘엠비의 성공 요인을 묻는 이들에게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효과적으로 운영되는 연구소에서는 과학적 창조성이 촉진되지만 위계가 분명하고 경직되고 관료적인 지배 구조와 산더미 같은 서류는 그것을 죽일 수 있다.” 관료주의가 과학을 지배할 때 그 나라의 과학은 죽는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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