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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3인방은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 권태호

등록 2014-12-07 18:45수정 2014-12-07 22:02

권태호 정치부장
권태호 정치부장
정윤회 문건 파동 등에 대해 새누리당의 한 의원에게 “왜 2년차에 벌써 이런 일이”라고 말하자, “벌써가 아니라, 늦게 나온 것”이라 했다. 2004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부터 폐쇄적이고, 비서 3인방(당시 4인방)을 통해서만 연결되고, 소통을 않는 전근대적 방식이 지금까지 제대로 문제 되지 않았다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라 했다. 지금은 ‘입안의 혀’ 코스프레를 하는 김무성 대표도 한때 박 대통령을 “민주주의 개념이 부족한 분”이라고 했다.

유신헌법을 입안한 사람이 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1970년대 양장점 의상을 입는 1970년대 대통령이 21세기 사회와 부딪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정윤회 문건 파동과 문화체육관광부 국·과장 인사 개입 의혹을 정무적으로만 판단하자면, 만일 대통령이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고 싶다면, 좀 더 세심했어야 했다. 미운 사람에게 떡(자리) 하나 더 줬어야 하는데, “무능, 비개혁”이라고 꼬리표를 달아 쌀쌀하게 내쳐버렸으니. 왜 그랬을까? 이 역시 1970년대 스타일이다. 지금은 ‘남산’(중앙정보부)이 없다.

대통령은 왜 그토록 주변 권고에도 ‘비서관 3인방’, 김기춘 비서실장, 그리고 도대체 알 수 없는 ‘비선’에 의존하는 걸까? 왜 대면접촉을 피하고 보고서만 싸 짊어지고 관저로 들어가는 걸까? 왜 기자회견은 않고 국무회의, 비서관회의에서 ‘부하들’ 앉혀놓고 가져온 지시시항만 줄줄 읽어나갈까?

자신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한 점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보여주려면 나름 철저하게 준비해야 하고, 토 달지 못하게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스타일이 무너진다. 지난 대선 토론회 때 우리는 ‘정치인 박근혜’의 진면목 일단을 엿봤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시대착오적인 부분이 많았지만, 이 대통령은 이른바 ‘계급장 달고’ 토론하기는 즐겼다. 본인이 훨씬 경험도 많고 똑똑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도한 자신감이었다. 취임 초, 주말에 테니스 치다 불쑥 기자실을 찾아 같이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은근히 즐기는 듯했다. 그런데 광우병 파동 이전까지였다. 광우병 파동 이후 이런 일은 눈에 띄게 줄었고, 그는 점점 권위적·폐쇄적이 되어갔다. 그때도 다들 ‘소통, 소통’ 했는데, 정반대로 갔다. 보호본능이 작동된 탓으로 보인다.

그러니 이번 사태를 통해 박 대통령이 바뀔까? 박 대통령은 7일 당 지도부와의 오찬 자리에서 “나는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누가 뭐라 해도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누가 뭐라 하면 흔들려야 한다. 그게 21세기다.

박 대통령은 사태가 터진 뒤 두 번이나 공식 자리에서 “찌라시,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목청을 높였다. 과장된 측면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억울할 것이다. 그렇다고 다 드러낼 순 없을 것이다. 딜레마다. “검찰수사를 지켜봐야”라면서 그 앞에 “일방적 주장”이라고 못을 박는다. 검찰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려면 몰래 해야지, 이렇게 공개리에 하면 검찰 입장만 더 난처해진다. 불안하거나, 아니면 ‘아니라 해도 당최 못 알아듣는 무지몽매한’ 국민들을 가르치려 들거나.

앞으로 김기춘 실장은 더 강력해질 것이다. 3인방은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앞으로 보안은 더 철저해질 것이고, ‘수첩인사’는 가속화될 것이고, 아니 인사도 잘 없을 것이다. 인사 기준은 ‘능력’ 아닌, ‘충성도’가 될 것이다. 이미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내치고, 새로 들이려 했던 인사가 정성근 후보였다.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가 유 전 장관을 향해 “인간 됨됨이”를 언급했다. 박근혜 정부가 지향하는 ‘인간 됨됨이’가 정성근 후보자인지.

박 대통령은 아마 왕을 했으면 잘했을 분이다. 차라리 1970년대에 박정희 대통령을 이어 곧바로 세습 통치를 했으면, 지금 같은 마찰은 없었을 것이다. 너무 늦게 대통령이 됐다.

권태호 정치부장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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