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 가운데 성소수자 문제가 심각한 정치·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는 곳은 우리나라와 미국뿐이 아닐까 한다. 모두 보수 기독교계가 논란을 주도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은 기독교 전통이 강한 나라다. 대통령이 취임할 때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하고 연설할 때도 하나님을 자주 호명한다. 퓨리서치센터의 조사를 보면 미국민의 78%가 기독교인이며, 33%가 진화론을 부정하고 창조론을 믿는다. 퓨리서치센터는 우리나라 기독교 인구를 29%로 집계하고, 세계적으로 종교적 다양성이 가장 높은 국가군으로 분류했다.
미국은 최근까지도 동성애 행위를 형사처벌했던 나라다. 이에 항의하는 대규모 저항도 있었다. 2003년 연방대법원이 ‘로런스 대 텍사스’ 사건에서 위헌 판결을 내릴 때까지 14개 주에 동성애 처벌법이 남아 있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문화적 핍박은 강했을지언정 동성애를 처벌하지는 않았다. 동성애를 불법화한 적이 없으니, ‘동성애 합법화’라는 표현은 틀렸다.
논란의 수준도 다르다. 미국에서는 △동성 간 결혼(33개 주에서 인정) △성소수자의 입양(독신 성소수자에게는 허용, 성소수자 커플의 경우 주마다 다름) △성소수자의 군복무(동성애자는 2011년부터 허용, 트랜스젠더는 계속 불허) 등 성소수자 권리의 제도적 확대를 둘러싼 힘겨루기가 진행돼 왔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시민 인권헌장’ 사태처럼 겨우 선언적인 차원의 차별금지 조항이 논란이 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오랜 기독교 전통과 성소수자 탄압 극복의 역사를 배경으로 차원을 높여가며 논란이 지속되는 것이라면, 우리나라에서는 근래 들어 저급한 수준의 논란이 불쑥 출현한 양상이다. 그런데도 일부 기독교계의 주장에 과도하게 휩쓸리는 정치권의 모습이 딱하다. 정부 차원에서는 9월 유엔 인권이사회가 채택한 역사적인 성소수자 차별금지 결의안에도 찬성표를 던진 바 있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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