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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두꺼비에 대한 생각 / 이창곤

등록 2014-12-14 18:50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2014년이 저문다. 내 생애에 이런 해가 있었던가? 너무나 많은 죽음이 있었다. 너무나 많은 상처와 슬픔이 있었다. 그리고 숱한 약속과 다짐이 뒤따랐다. 위험사회란 진단이 내려졌고, 국가의 역할이 논해졌으며, 다시는 이런 사회를 방치하지 않겠다며 대한민국 개조란 주창도 나왔다. 그러나 달라진 건 없었다. 상처는 아물지 않았고, 눈물은 때로는 위선이었으며,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 기만이 실체를 드러내며 살아있는 자들에게 더 큰 생채기를 남겼어도, 사회적 성찰은 여전히 부실하고 공적 분노는 방향도 없고 유약하기만 하다. 죽음도, 상처와 슬픔도, 약속과 다짐도 과거로 박제됐고, 또다른 죽음과 상처가 일상처럼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이 모든 모순과 비극을 일소할 해결사는 어쩌면 시간일지 모른다. 그 어떤 유예도, 그 어떤 기만도 허락하지 않는 각인에게 주어진 특별한 시간이며, 일체를 완벽히 잠재우는 적멸의 시간이다. 그것만이 가장 명쾌한 비극의 방책일지 모른다. 철저히 개별적이며, 순서 또한 알 길 없지만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다는 점에서 그것은 대체로 공평하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네 삶이 적멸의 시간 앞에 그저 웅크리며 본능만을 쫓는다면, 미물의 것과 무엇이 다를까?

청년기, 개혁가의 삶은 그 궁극의 시간이 다가오기까지 독사에게 잡혀 몸부림치는 두꺼비의 모양새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적이 있다. 2014년을 정리하면서 이 오래된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독사한테 잡힌 두꺼비에게 안식은 죽음밖에 없다. 하지만 두꺼비는 무기력하게 죽음만을 기다리지 않는다. 두꺼비의 모양새가 온전히 비극이라고만 할 수가 없는 것은 그 비극이 종족번식을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란 점에서다. 스스로 뱀을 찾아 잡혀 죽어야 하는 두꺼비의 숙명은 자신의 알을 뱀의 몸속에 낳고자 한 선택이다. 뱀의 몸 안에서 어미 두꺼비는 죽지만 알은 그 속에서 부화해 죽은 뱀을 자양분 삼아 성장한다. 생존을 위해 뱀의 아가리를 탈출하려는 몸부림과, 알의 부화와 생존을 위해 잡아먹혀야 하는 숙명 사이의 모순적 긴장이 두꺼비의 최후이자 생애의 정점이다.

그저 뱀의 아가리에서 죽음의 시간을 기다리는 두꺼비와 처절하게 몸부림치며 오히려 자신을 잡아먹는 뱀을 종족 번식의 터로 삼는 두꺼비 사이에서, 결과의 차이는 없다. 뱀에게 잡아먹힌다는 점에선 동일하다. 하지만 삶의 모순적 긴장을 자각하고 치열하게 저항하는 몸부림, 그것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다름은 그 의미가 적지 않다. 숙명을 받아들이면서도 처절하게 몸부림쳐 뱀이 서둘러 자신을 잡아먹도록 해 결국 그 몸 안에서 자신의 알을 부화시키는 두꺼비들에서, 우리는 개혁가의 비극과 함께 때로는 그들의 치열성과 위대함을 함께 본다.

1983년 민주화를 열망한 청년조직의 상징이 이 두꺼비였다. 엄혹한 독재에 맞서 두꺼비처럼 저항하고자 했던 이 조직을 이끈 이가 이달의 끝에 3주기를 맞는 ‘민주주의자’ 고 김근태 전 의원이다. 그를 비롯한 두꺼비들이 독재권력의 갖은 고문과 탄압 속에 잉태해낸 것이 이 땅의 민주주의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우리는 그 민주주의를 또렷이 세우질 못했고, 오히려 퇴행을 방치하기도 했다. 그 결과가 숱한 죽음과 상처를 낳고 있는 본질적 배경인지 모른다. 무수한 아이들이 생목숨을 잃었지만 세상이 조금도 바뀌지 않는 까닭도, 노동자들이 엄동설한에 폭 1m의 굴뚝 꼭대기에서 농성을 벌일 수밖에 없는 현실도, 어쩌면 이 땅에 독사에게 잡힌 두꺼비들이 사라지고 있거나 혹은 몸부림을 잃은 그들의 무기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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