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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법인격 / 박순빈

등록 2014-12-21 18:47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인간이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살아 숨 쉬는 ‘자연인’(natural person)이고, 다른 하나는 ‘인위적 인간’(artificial person)이다. 대표적으로 기업이 바로 법적 인격이 부여된 조직이다.

시장경제 체제에선 기업이 법적으로 자연인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기도 한다. 법적 책임도 자연인보다 가볍다. 자연인은 자칫하면 권력자에게 짓밟히기 쉽지만 기업은 실존적 가치를 송두리째 빼앗기는 경우가 드물다. 범행으로 감옥에 갈 우려도 없고, 새로운 이름을 쉽게 만들 수 있으며, 하루 만에 정체성을 바꿀 수도 있다.

사람은 이익을 내기 위해 거짓말을 하면 사기죄로 처벌받지만 기업은 적당한 선에서 거짓말을 하더라도 정당한 영업활동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 심한 경우 벌금이나 과태료 부과 정도의 책임을 지면 된다. 기업은 표현하는 권리까지 철저하게 보장받고, 대리인을 내세워 입법 청원이나 정부 로비 활동을 벌일 수 있다.

기업 내부로 들어가면, 인간과 법인 간 법적 불평등이 더 심해진다. 기업 안에서 개인은 사생활 보호와 표현의 자유 등 여러 헌법적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 고용주나 조직 내의 상급자가 인격을 모독하고 인권을 훼손하더라도 웬만하면 참고 견뎌야 한다. 이런 불평등 구조에서 ‘힘있는 개인’은 법인의 보호막에 숨기도 한다. 이 경우 개인의 죗값을 법인이 치러야 한다.

대한항공이 조현아 전 부사장이 저지른 ‘땅콩 회항’ 사건으로 궁지에 몰려 있다. 이 사건에 국민적 공분이 일자 대한항공이 최근 대국민 사과 광고를 냈다. 사과의 주체는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인 조현아 전 부사장이 아니라 대한항공이다. 개인의 죄에 대한 책임을 법인이 덮어쓰는 꼴이다. 다행히 범행 당사자들을 상대로 한 검찰 수사가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다. 이번에야말로 엄한 선례를 남겼으면 한다. 그래야 수만 명의 생계와 행복이 걸린 법인의 격도 높일 수 있다.

박순빈 논설위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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