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수 선임기자
말도 많고 탈도 많던 한·미·일 3국간 군사정보공유 양해각서(기관간 약정) 체결이 곧 이뤄질 모양이다. 이르면 연내에, 늦어도 내년 초에는 윤곽이 나온다고 한다. 어쩌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지난 5월 샹그릴라 대화에서 한·미·일 국방부 장관이 만나 3국간 정보공유 방안을 실무 논의하기로 합의했고, 이태 전 한-일 정보보호협정이 체결 직전 무산된 때부터 미국을 끼워넣어 3국간 추진하는 우회로가 예고된 셈이니, 따지고 보면 ‘언제냐’의 문제였다.
그래도 애초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추진하겠다던 정부의 다짐에는 흠집이 생겼다. 국방부는 그동안 “실무협상이 진행 중”이라는 말만 되뇌다가, 며칠 전 일본 언론에 ‘각서 체결이 임박했다’는 보도가 나오니까 그제야 부랴부랴 “상당 부분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는 입장자료를 냈으니, “뭐가 투명하고 공개적이냐”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게 됐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 증가는 지난달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의 환수를 무기 연기한 핵심 사유였다. 그러니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일본과 정보 교류가 필요하다는 논리는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도 “집단 자위권을 행사하겠다”고 나서 우려를 낳고 있는 일본의 군사적 야망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 된다는 점은 경계하지 않는 것 같다.
한·미·일의 3국 군사협력은 그동안 꾸준히 확대돼 왔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 4월 차관보급 안보토의가 열렸고, 5월에는 국방부 장관 회담, 6월에는 합참의장 회의가 잇따랐다. 3국간 해상구조훈련 명목의 군사훈련도 6월에는 하와이에서, 7월에는 제주 해상에서 이어졌다.
이번 3국간 정보공유 약정 추진은 이런 통상적인 군사교류를 넘어 3국간 미사일방어 협력을 위한 예비작업 혐의가 짙다. 실상 3국간 미사일방어 협력에 기술적 제약은 별로 없다. 한국과 미국은 2020년대 구축될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와 미국의 ‘미사일방어’(MD)를 연동해 운영할 계획이다. 한·미의 시스템이 ‘상호운용성’을 확보해 북한 미사일의 ‘탐지·방어·교란·파괴’(4D)에 필요한 정보를 주고받으며 연합작전을 수행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일본과도 상호운용성을 확보해 실시간 데이터를 주고받는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따라서 한·일의 미사일방어는 기술적으로 미국을 매개로 서로 연결망을 확보하게 된다. 이번 약정이 체결되면 3국간 북한 핵과 미사일 정보 공유의 ‘기본 틀’이 구축되는 것인 만큼, 한-일 간 미사일방어 협력을 막을 제도적 걸림돌마저 사라지는 셈이다. 군 당국은 그동안 한-일 간 미사일방어 협력 가능성에 대해 “그런 일은 없다”고 부인해왔다. 그러나 앞으로 ‘안보상 꼭 필요하다’는 논리가 제기될 경우에도 이런 입장을 꿋꿋하게 지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한·미·일 3각 군사협력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최근 중국의 부상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자칫 우리가 미-중의 군사적 대결 구도에 휩쓸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2006년 1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 이래 손사래를 치면서도 속절없이 한발 한발 끌려들어가는 모양새다.
기실 이런 현실은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고 적대적 대결이 격화되면 벗어날 길이 없다. 한반도에 안보 우려가 높은 상황에서 어떻게 미국의 요구를 뿌리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결국 열쇠는 남북관계다. 남북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해 군사 긴장을 낮춰야 한다. 그래야 미국에 안보를 덜 의존하게 되고 우리의 목소리를 더 크게 낼 수 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유연하고 창조적인 대북정책을 기대해 본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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