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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남북의 이미지 전쟁과 ‘인식의 지체’ / 김보근

등록 2014-12-21 18:57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1995년의 북한’과 ‘1998년의 남조선’.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지금도 마치 ‘살아 있는 유령’처럼 한반도를 떠다니는 모습들이다. 심각한 식량난으로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었던 ‘1995년 북한’은 남쪽 정부와 보수 언론의 묘사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로 비정규직이 크게 느는 등 주민들에게 팍팍한 삶을 강요했던 ‘1998년 남조선’은 북쪽 매체 속에서 아직도 쉽게 발견된다.

최근 ‘재미동포 아줌마’ 신은미씨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은 한반도를 배회하는 이 유령의 위세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또렷이 드러낸다. 이 둘은, 남북이 상대를 낡은 이미지에 묶어두려는 ‘이미지 전쟁’을 강화함에 따라 우리 사회가 ‘인식 지체 현상’에 빠져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다.

먼저 북의 인터넷매체 <우리민족끼리>가 12월 들어 남한 사회를 묘사한 내용들을 살펴보자. <우리민족끼리>는 ‘송파구 세모녀 자살 사건’과 ‘윤 일병 구타 사망 사건’, ‘세월호 침몰 사고’ 등을 거론하며 남쪽 사회를 매우 부정적으로 묘사했다. “심각한 생활난으로 련애, 결혼, 해산을 포기하는 ‘3포세대’가 늘어나고” 있으며, “자살률에서 세계 제1위라는 하나의 사실만 놓고서도 초보적인 생존권마저 유지할 수 없는 인권불모지”라는 것이다.

북이 거론한 사례 중 틀린 내용은 없지만, 그것만이 남한의 실체는 아니다. 그러나 북쪽 언론이 이렇게 부정적 이미지만으로 보도함으로써 북 주민들 중 상당수는 남에 대해 ‘1998년 아이엠에프 이미지’를 갖게 될 것이다.

남이 북을 묘사하는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종합편성채널(종편) 등 보수 언론에서 쏟아내는 북의 이미지가 대표적이다. 또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에서 발표한 드레스덴 구상도 마찬가지다. 북한을 돕겠다는 이 구상에 대해 북한이 왜 그렇게 강하게 반발한 것일까. 그것은 ‘모자보건 1000일 패키지’ 등 지원 내용이 ‘1995년 북한의 식량난’을 연상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은 드레스덴 구상을 ‘남한 당국이 지원을 빙자해 자신들의 이미지를 20년 전쯤에 묶어두려 하는 술수’로 판단했을 수 있다.

남북이 이렇게 상대방의 이미지를 낡고 부정적인 쪽으로 묶어두면서 ‘다른 목소리’를 배제하려 하면, 사람들은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고력을 잃게 된다. 북한은 여전히 ‘모자보건’에 대한 지원이 필요한 ‘고난의 행군’의 나라라면, 평양의 문수물놀이장이나 마식령스키장 개장, 현대식 슈퍼마켓의 등장, 가족 단위 외식의 증가 등 새로운 현상은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북한을 직접 돌아보고 온 신은미씨 등의 증언을 테러로 막는 사회에서 기껏 할 수 있는 해석은 ‘그런 것들은 모두 정치쇼’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중국 동북3성의 북한에 대한 자본투자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인식은 너무나 안이하다. 북한에 대한 ‘인식 지체’가 심해지면, 어떤 합리적인 대북정책도 통일방안도 세울 수 없다. 더욱이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보듯 우리 사회 내부에 대한 인식도 균형감을 잃게 된다.

그런 인식 지체는 우리 민족을 현재의 세계에 살지 않고, 20년 전 과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로 만들게 된다. 그 결과 우리 민족은 세계 각국과의 경쟁에서 크게 뒤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남북이 서로에 대한 종합적인 사고를 가지려면, 다양한 목소리가 허용돼야 한다. 북한에 대한 다양한 증언 속에 담긴 ‘다양한 진실’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그때에야 우리는 ‘인식 지체’에서 벗어나 한반도의 미래를 보는 눈을 가지게 될 것이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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