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여왕벌의 비행(非行) / 김우재

등록 2014-12-22 18:46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서진모는 <여왕벌 하늘을 날기까지>라는 저술에서 첫 여성 대통령의 당선을 여왕벌의 비행에 비유하며 그 위대함을 칭송했다. 인물평전 작가인 그는 한국을 일종의 벌집으로 상정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사회통합을 이룰 여왕이 되어주길 바란 듯싶다. 하지만 피상적인 비유는 오해를 낳는다. 한국은 벌집이 아니고, 대통령은 여왕벌이 아니며, 국민은 일벌이 아니다.

곤충의 행동은 생물학자들에게 언제나 경탄의 대상이었다. 좁쌀만 한 뇌를 지닌 곤충이지만, 수억년간 진화해온 행동의 다양성은 큰 뇌를 지닌 인간보다 흥미롭기 때문이다. 곤충은 지구상의 어떤 종보다 뛰어난 적응능력과 번식력으로 동물 종의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다. 고생물학자 굴드는 진화의 테이프를 되돌려 척삭동물의 조상만 지우면 지구는 곤충과 꽃들로 가득한 무적의 왕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계인의 시각에서 곤충은 지구의 실질적인 주인이다.

그 행동들 중 여전히 신비로 남아 있고, 많은 생물학자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진사회성’(eusociality)이다. 진사회성이란 개미, 흰개미, 꿀벌 등에서 나타나는 고도로 진화된 사회성으로, 보통 다양한 계급의 분화와 특히 생식을 하지 않는 암컷 일꾼들의 존재로 규정된다. 생식은 전적으로 여왕과 수컷에 의해 이루어진다. 수컷들은 대부분 반수체로 정자로서의 기능만을 담당한다. 다양한 계급은 유전적 배경이 아니라 환경적 배경, 특히 유충 시기에 경험한 영양적 차별에 의해 결정된다. 여왕은 여왕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특별한 음식으로 키워진 셈이다.

여왕벌이 하는 일은 단순하다. 벌집에서 여왕벌은 일벌들에게 완전히 둘러싸여 알을 낳거나 여왕물질을 분비하는 단 두 가지의 단순작업에 몰두할 뿐이다. 여왕물질은 여왕벌의 대악선(큰턱샘)에서 분비되는 페로몬의 일종으로 일벌들을 자신의 주변으로 유인하고, 같은 무리의 개체로 인지할 수 있는 표지가 되기도 하며, 일벌의 난소 발육을 억제시켜 일벌이 알을 낳지 못하게 만든다. 여왕물질은 벌집의 사회통합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그 물질을 생산하고 알을 낳는 일 외엔 무력하기 짝이 없는 여왕 주변에서, 벌집을 유지하기 위한 청소, 육아, 방어, 먹이채집 등등의 모든 일들을 담당하는 것은 일벌들이다. 게다가 이 일들은 여왕이 지시하는 것이 아니며, 일벌들의 의사소통에 의해 자율적으로 수행된다. 일벌들 간의 의사소통이 없다면 꿀벌 사회의 통합은 없다. 벌집의 주인은 일벌들이다.

여왕벌의 비유가 현직 대통령의 행동과 닮아 있는 경우도 있다. ‘공공부문 고위직 여성의 공적관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라는 논문엔 ‘여왕벌 신드롬’이라는 개념이 소개되고 있는데, 조직 안에서 인정받는 여성은 자기 하나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고위직 여성들에게 나타나는 행동패턴을 일컫는 개념이다. 그래서일까. 청와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은 여왕벌 주변에 몰려든 수컷들의 권력다툼으로 요약되는 것 같다. 정상적인 꿀벌 사회에서 여왕벌은 일벌들에 둘러싸여 있어야 한다.

서진모의 비유가 피상적인 이유는 또 있다. 진사회성 동물의 여왕은 생식능력을 독점한 계급이기 때문이다. 생식을 하지 않는 계급은 일벌이지 여왕벌이 아니다. 특히 여왕벌은 평생 단 한번 비행을 하는데, 그 목적은 짝짓기다. 즉, 첫 여성 대통령의 당선을 여왕벌의 비행으로 비유하는 것은 생물학적으로도, 정치적 수사로도 그다지 큰 장점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짝짓기를 위해 대통령에 도전했을 리도 없을뿐더러, 청와대 안에 틀어박혀 단순작업만 하는 대통령이 되고 싶을 리도 없기 때문이다. 피상적 비유는 칭송하는 대상의 위엄에 해가 될 수도 있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경호처를 대통령으로부터 분리해야 한다 [권태호 칼럼] 1.

경호처를 대통령으로부터 분리해야 한다 [권태호 칼럼]

최상목의 자기합리화…‘석열이형’에게 미안해서 [1월6일 뉴스뷰리핑] 2.

최상목의 자기합리화…‘석열이형’에게 미안해서 [1월6일 뉴스뷰리핑]

[사설] ‘법 위의 윤석열’ 응원한다며 관저 달려간 국힘 의원들 3.

[사설] ‘법 위의 윤석열’ 응원한다며 관저 달려간 국힘 의원들

[사설] 탄핵심판에서 내란죄 제외, 전혀 논쟁할 일 아니다 4.

[사설] 탄핵심판에서 내란죄 제외, 전혀 논쟁할 일 아니다

‘개같이 뛰고 있다’…쿠팡은, 국가는 무얼 했나 [6411의 목소리] 5.

‘개같이 뛰고 있다’…쿠팡은, 국가는 무얼 했나 [6411의 목소리]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