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수 ㈔오픈넷 이사
토론이 점차 사라지고 높은 분의 말씀과 지시가 중심인 회의. 방송을 통해 비친 대통령이 참여하는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의 단면만은 아니다. 기업과 대학 등 우리 사회의 크고 작은 일상 회의에서 개인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975년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 연구진은 대마초 합법화에 대한 청년들의 의견을 인터뷰 방식으로 조사했다. 조사 방법에서 특이한 면은 대마초에 대한 생각을 표현한 개인의 이름을 기록한 인터뷰와 이름을 적지 않은 조사를 병행했다는 점이다. 이 연구는 익명성 여부에 따른 의사 표현의 차이를 조사했다. 이름이 알려진다는 두려움 때문인지 몰라도 대마초 합법화에 찬성하는 쪽이든 반대하든 쪽이든 개인 의견에서 “나”(I), “나를”(me) 등 자신을 표현하는 단어가 사라졌다.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았을 때, 제3자를 인용하며 자신의 생각인 양 이야기하기도 하고 이도 저도 아닌 의견이 다수를 차지했다. 누군가 내 목소리를 듣고 있다고 상상할 때 대마초 합법화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거칠고 공격적이었다.
자신의 행동을 누군가 지켜볼 때 우리는 때론 착해진다. 2005년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은 직장 휴식공간에 커피 기계를 설치했다. 커피 기계 옆에는 커피 값에 대한 자발적 기부를 요구하는 문구와 함께 사람의 눈 이미지를 부착해 두었다. 매일매일 사람 눈 이미지는 공격적으로 변했다. 그러자 기부금이 증가했다. 감시의 눈초리는 우리를 온순하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다.
누군가 우리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거나 또는 기록할 때 거짓이 자라난다. 불필요한 타협이 습관이 되고, 자신을 지키고자 상대방을 공격하는 태도가 몸에 밴다. 서로의 생각이 거칠게 오가는 토론의 들쑥날쑥한 결과물이 번번이 윗사람에게 무시를 받거나 책망의 근거가 될 때 우리는 바보가 되고 우리의 생각은 가난해진다.
감시가 일상인 곳, 윗사람의 말씀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곳은 전체주의 국가 북한만은 아니다. 회의가 창조적인 집단 사고가 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쉽게 알 수 없는 윗사람의 뜻에 어긋나는 생각과 표현이 해당 조직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생각과 표현의 주체가 윗사람에게 기억되기 때문이다.
카카오톡 검열 논란 중 서울중앙지검 검사 중 한 명은 ‘수사기관이 인터넷을 모니터링하면 시민들이 위축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자신이 아무 문제 없는 글을 쓰는데 위축될 이유가 없지 않으냐”라고 반문했다. 반면 인터넷 비평가 모로조프는 빅데이터 시대에서 스마트폰 또는 페이스북 이용을 탄소 배출에 비유한다.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인 데이터는 이용자 자신뿐 아니라 다른 이용자에게까지 부정적 효과를 미친다는 주장이다. 그에 따르면 스마트폰을 이용하지 않거나 이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이 시대의 미덕이다. 모로조프의 주장이나 위축될 이유가 없다고 강변하는 검사의 목소리는 서로 다르지 않다.
회의가 권위적으로 진행된다고 회의를 거부하거나 윗사람 뜻에만 맞춘 행동과 발언만 할 수는 없다. 구글, 페이스북, 네이버, 카카오톡이 국가에 의한 감시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해서 이메일을 쓰지 않고 검색을 멀리하며 카카오톡에 등을 돌리는 행위가 미덕이 될 수 없다.
개인의 말문을 막는 사회, 창의성은 산만함에서 시작함을 부정하는 회의는 방사능처럼 우리 사회를, 우리 기업을 허약하게 만든다. 익명의 달콤함은 사회를 살찌게 하고, 토론과 논쟁이 살아 있는 회의는 조직을 성장하게 한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 문화, 다른 생각을 존중하는 회의 문화가 사라진다면 한국 사회의 달콤한 미래는 없다.
강정수 ㈔오픈넷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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