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범 대중문화평론가
프리랜서를 하니까 전에 안 하던 일을 하게 된다. 시간 조절이 가능하니까 돈 주고 남 시킬 일을 직접 하곤 하는데, 그중 가장 큰일이 얼마 전에 한 전세권 설정 등기였다. 전세보증금이 다른 채권에 밀려 떼이지 않도록 등기를 하는 건데, 이런저런 비용 30여만원에 법무사를 시키면 22만원이 더 들었다. 직접 해보자! 시간이 걸리면 어떠냐.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게 하는 한 중요한 요소이기도 할 거다.
‘전세권 설정 등기 신청’이라고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등기소 가기 전에 구청 가라, 은행 가라, 이 서류 준비해라, 저 서류 준비해라 여러 가지로 복잡했다. 또 ‘등록면허세’ ‘등기신청수수료’ ‘법원행정처장이 정한 수납 금융기관’ 등 모르는 말이 수두룩했다. 그렇겠지. 법무사들 돈 벌게 하려고 복잡하게 해놨겠지. 그렇다고 여기서 질 수는 없지. 쫄지 말자.
신청서류 양식을 내려받으려고 대법원 인터넷등기소 누리집에 들어갔다. 검색창에 ‘전세권 설정 등기’ 하고 쳤더니 아무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단어를 몇차례 바꿔 쳐봐도 안 나왔다.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이러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지금이라도 법무사 시킬까…. 이러면 안 된다. 이런 일 할 때야말로 중요한 태도가 ‘하면 된다’는 정신이다. 마음 다잡고 ‘전세권설정등기’를 다 붙여서 쳤더니 양식이 나타났다. 검색어를 띄어 쓰지 말라는 안내글이라도 올려놓을 것이지….
전세권 설정 등기 신청서 양식을 다운받았더니 등기 신청하는 방법에 대한 안내가 나와 있었다. 생각보다 잘 돼 있었다. 몇 차례 읽고 나서 집주인의 인감도장을 받아야 할 서류(전세권 설정 등기 신청서, 위임장)들을 작성한 뒤 집주인에게 넘겼다. 며칠 뒤 이 서류들과 부동산 등기필증을 건네받아 집을 나섰다. 머릿속에 동선을 그려봤다. 먼저, 구청에 가서 ‘등록면허세’ 고지서를 발부받는다. 구청에서 내 주민등록등본도 한 통 뗀다. 구청 옆 은행에 가서 등록면허세를 내고 영수증을 받는다.
여기까지는 쉬웠다. 실제로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헤맨 게, 등기신청수수료였다. 안내문에는 이렇게 나와 있었다. “법원행정처장이 지정하는 수납금융기관 또는 신청수수료 납부기능이 있는 무인발급기에 현금으로 납부한 후 발급받은 등기신청수수료 영수필확인서를 첨부합니다.” 그런데 ‘법원행정처장이 정한 수납금융기관’이 어딘지 알 도리가 없었다. 인터넷에 쳐도 안 나오고, 구청 근처 은행에서 등록면허세 내면서 물어보니 옆 은행에 가보라고 해서 갔다. “등기 신청할 때 돈 내는 거 이 은행에서 담당한다고 해서….” “아, 수입증지 사시려고요? 금액은요?” “근데 수입증지가 맞나요?”
직원도 나도 확신이 없었다. 결국 몇번 더 왔다갔다할 각오를 하고 등기소로 갔다. 등기소 직원이 친절했다. 내가 준비해 간 서류들을 훑어보면서 빈칸은 자기가 써넣겠다며 편철을 했다. “등기신청 수수료는 어디다 내나요?” “저기에 1만5000원 넣고 영수증 받아오세요.” 창구 바로 앞에 무인발급기가 있었다. 더 이상 발품 팔 일 없이 그날 접수를 마치고 나오면서 생각했다. 안내문을 조금 더 쉽고 친절하게 쓰면 안 되나.
이 글 쓰기 전에 인터넷등기소에 전화를 해보고서야 알았다. 안내문에서 말하는 ‘법원행정처장이 정하는 수납금융기관’이 신한, 우리, 전북은행과 농협, 네 곳이라는 걸. 또 지난해에 등기수입증지가 사라져 현금 납부를 해야 하는데, 이 네 금융기관이라고 해도 등기소 근처에 있지 않으면 직원이 그런 제도를 잘 모를 수 있다는 걸. 그러니 안내문에 무인발급기가 등기소에 있으니 등기소 와서 내면 된다고 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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