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1일 뜻밖의 편지를 받았다. 원고지로 70장에 가까운 장문의 전자우편이었다. 보낸 이는 대구에 사는 생면부지의 24살 대학생이었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을 했고, 지금은 “당뇨병과 고혈압을 앓는 어머니, 정신지체 2급의 누나와 함께 16평 임대아파트에서 국가의 도움으로 살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또 “국가근로를 하면서 교통비, 생활비, 병원비, 약값, 교재비 등을 충당”하고 있으며, “과거 중고교 시절 따돌림으로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다”고도 밝혔다.
이런 자신의 처지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도록 했으며, 그들의 “삶이 더 개선되길 바라는 마음은 이 세상 누구 못지않지”만, “경제는 양극화되어 있고, 가난한 사람들은 계속 고통받고 삶의 극한에서 몸부림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런데도 “정치권에서는 싸우고” 있을 뿐이며, “신자유주의 체제가 큰 결함이 있는 것임이 드러났는데도 확실한 대안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고 적기도 했다.
“무엇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일까?” 그는 이런 의문을 품고 “사회적 약자들이 진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환경”, “더 이상 양극화, 빈부격차, 상대적 박탈감이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방법”, “모두가 돈 때문에 울고 웃는 이런 잘못된 세상을 탈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경제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려고 노력을 했는데, 이에 대한 해답을 줄 인물을 찾았기에 이렇게 메일을 보내게 됐다고 새해 벽두부터 편지를 하게 된 까닭을 말했다.
그가 찾았다는 인물은 실비오 게젤(1862~1930)이다. 그는 게젤의 사상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편지의 대부분을 벨기에 태생의 이 독일 경제학자의 사상을 전하는 데 할애했다. 게젤은 일부 매체에서 소개된 바 있지만,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이 경제사상가는 자본주의 경제질서에서 나타나는 모든 사회악은 돈에 붙은 이자와 땅에서 얻는 지대 때문이라고 보고 ‘감가(減價)되는 화폐’ 제도와 토지의 국유화 정책을 도입할 것을 주창했다.
특히 ‘노화하는 화폐’라고도 하는, 독특한 화폐 제도는 돈이 갖는 불멸의 특권을 폐지하자는 아이디어다. 사람의 일생처럼 돈에도 생명력을 부여해 나이를 먹고 노화해서 결국은 소멸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는 “오늘의 1만원 지폐가 내일은 9천원, 모레는 8천원.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가치가 0으로 떨어지게 되면 사람들은 돈을 보유할수록 손해이기 때문에 빨리 사용하려 할 것이고, 그만큼 고용과 상품 수요가 늘어나 경제위기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며 “(게젤의 사상은) 어찌 보면 말이 안 되는 것이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생각이 세상을 좀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적었다.
“이제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어 볼 때도 되지 않았을까요? 기존의 이자와 지대라는 패러다임 말고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말입니다. 사회 정의가 제대로 발현되는 사회를 만들려면 경제 문제에서 정의가 실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그래야 행복이 찾아올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새해 첫날에 보내온 대학생의 편지에는 궁벽한 처지에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청년의 열정이 한껏 묻어 있었으며, 비록 한 경제학자의 아이디어에 기대긴 했어도 그의 도전적 상상은 충분히 신선했다. 2015년, 이 땅에 희망이 있다면, 이런 청춘의 열정과 상상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겸 편집국 부국장 goni@hani.co.kr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겸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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