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던 1930년대 여러 나라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의무화했다. 일제의 조선총독도 1937년부터 매월 6일을 애국일로 정해 국기 게양과 함께 일왕에 대한 충성 맹세를 제창하도록 했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웨스트버지니아주에서 종교적 이유로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한 학생이 퇴학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학생이 속한 종파는 ‘반역자’ ‘나치’라는 지탄 속에 신도들이 성난 군중에게 폭행당하는 일도 잦았다.
그런데 두 학생의 아버지가 낸 소송에서 연방대법원은 국기에 대한 경례 강요는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우리 헌법의 별자리 가운데 움직이지 않는 하나의 별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통치자도 정치·애국심·종교에 대한 다양한 의견 중에 무엇이 정통인지를 규정할 수 없고, 그에 대한 신념을 고백하도록 강요할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판결은 정부가 아무리 다수의 힘을 등에 업고 기본권을 제한하려 하더라도 사법부가 이를 저지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판결이 내려진 날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그것도 미국의 국기 제정 기념일인 6월14일이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1972년 우리나라에서는 국기에 대한 맹세가 제창되기 시작했고, 78년부터는 전국적으로 국기 하강식이 의무화됐다. 대법원은 76년 종교적 이유로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한 여고생들을 퇴학시킨 조처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획일화된 국가주의 사회를 만드는 데 정부와 사법부의 손발이 딱딱 맞았던 셈이다.
국기 하강식이 폐지되고 25년이 지난 오늘날 박근혜 대통령은 다시 ‘국기배례’에서 애국심을 찾는다. 연초 신년인사회에서는 헌법재판소장·대법원장을 앞에 두고 정부·입법부·사법부 등이 “손발을 맞춰” 나가자는 말까지 했다. 통합진보당 해산 과정에서 정부와 헌재는 호흡이 꽤 잘 맞았다. 견제와 균형의 삼권분립 원리로 움직여야 할 국가기관들이 손발을 맞춰 만들어갈 나라는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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