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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보수정부 7년의 후과 / 한귀영

등록 2015-01-06 18:44

문득 10년 전, 2004년을 회상해 본다. 노무현 후보가 2030세대의 열광적 지지에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된 뒤 세대갈등, 이념갈등에 대한 우려가 극에 달했다. 2002년 대선 당시 보수논객 조갑제는 공개적으로 “노무현에게 투표하는 자식들에게 등록금 주지 마라”고까지 했다. 2004년이면 이 갈등이 국회의 대통령 탄핵 결의로 최절정으로 나아가던 무렵이다. 나라가 세대와 이념의 전쟁터 같았다.

이제 와서 돌이켜 보니 10년 전의 세대·이념 갈등은 순진하게 느껴지기조차 한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20대와 60대 이상, 진보와 보수 간 인식의 양극화는 참담할 정도다. 2004년과 동일 문항으로 2014년 말 진행된 <한겨레> 신년기획조사가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세대간 양극화의 경우, 내가 사는 나라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더니 ‘만족한다’는 응답이 2004년에는 20대 28.1%, 60대 이상 31.3%로 차이는 불과 3.2%포인트였다. 하지만 2014년에는 20대 28.4%, 60대 55.5%로 두배 가까이 벌어졌다. 우리 사회 미래 전망에 대한 질문에서도 낙관 응답이 2004년에는 20대 57%, 60대 64.8%였지만 2014년에는 20대 36.1%, 60대 54.6%로 커졌다.

20대, 미생들이 보는 한국 사회는 지난 10년 사이에 “회사 안은 전쟁터, 밖은 지옥”인 미친 세상으로 변했다. 여간해선 ‘88만원 세대’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든 이들에게 세대 문제는 계급 문제와 겹쳐진다. 반면 60대에게 한국 사회는 영화 <국제시장> 주인공 덕수의 대사처럼 “힘든 세월에 태어나가 이 힘든 세상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그래서 긍정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며 지난 10년도 예외는 아니다. 이처럼 국제시장 세대와 미생 세대는 같은 땅을 딛고 있지만 세상을 보는 시각도 가치도 상이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인구집단이다.

진보층과 보수층 간의 양극화도 지난 10년을 거치면서 훨씬 심해졌다. 이념갈등이 극에 달했다던 2004년만 해도 실제 두 집단의 인식 차이는 미미했다. 한국에 대해 ‘만족한다’는 응답이 진보층 28.8%, 보수층 27.9%로 비슷했다. 하지만 2014년에 이르면 진보층 21.8%, 보수층 52.2%로 크게 벌어졌다. 미래 전망에 대한 응답도 다르지 않다.

이 같은 세대간, 이념간 극심한 양극화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갈등을 해소하기는커녕 갈등을 주된 통치수단으로 삼아온 정치권, 특히 집권세력의 책임이 가장 크다. 보수정부 7년, 특히 박근혜 정부는 말로는 통합을 외치면서도 자신을 지지한 51%의 ‘좋은 국민’과 나머지 ‘나쁜 국민’을 갈라치기 하는 ‘배제의 정치’를 공공연히 구사해왔다. 잊을 만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종북주의 광풍은 노골적인 편가르기를 통해 소통과 성찰의 공간을 압살해왔다.

<한겨레> 조사에서 국민들의 33.4%(복수응답)가 정치혁신을 우리 사회의 선결과제로 가장 높게 꼽은 것은 정치권의 책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0년 전보다 상황이 훨씬 나빠졌다고 응답한 20대, 그리고 진보층에서는 정치혁신에 대한 요구가 더욱 절실했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이번 조사에서 또 하나 짚어볼 대목은, 그래도 시민들은 지난 10년을 거치면서 풍요와 성장이 아닌 복지와 평등, 즉 연대에 대한 의지가 강력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즉 시민사회 차원에서는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서 더 많이 가진 기득권층이 못 가진 젊은 세대, 사회적 약자에게 양보해야 공존할 수 있다는 각성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연대를 통한 공존의 요구에 대해 이제 정치가 응답하고 책임져야 할 차례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hgy421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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