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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헌법재판이 위헌이라면? / 손아람

등록 2015-01-07 18:57수정 2015-01-07 18:57

손아람 작가
손아람 작가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한 뒤, 한국헌법학회장을 역임한 최용기 교수가 국회에 헌재 재판관들의 탄핵을 청원했다. 통합진보당을 해산할 뿐만 아니라 소속 의원들의 자격까지 박탈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위헌이라는 것이다. 사실 그의 청원은 분노의 농담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국회가 청원을 받아들여 헌재 재판관들을 탄핵한다면 그 심판은 어디에서 하는가? 헌법재판소에서 한다. 헌재 재판관들이 스스로의 탄핵을 심판하는 광경을 지켜본다면 흥미진진이야 하겠지만 재판의 결과는 썩 유쾌하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이 탄핵 청원은 중요한 법철학적 질문을 내포하고 있다. 최상위 규범인 헌법을 해석하고, 명문화된 법을 무효화하고, 법이 정한 권리를 박탈할 수 있는 메타법적 최종심급의 권한을 가진 헌법재판소의 판단 자체가 헌법에 반할 때, 헌법재판소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은 무엇인가?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이후 반민주주의적이라는 논평이 쏟아졌다. 이것은 위헌과 논리적 동치나 다름없는 표현이다. 헌법이 바로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에 관한 규범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직접적으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위헌 소지가 있다고 목소리를 낸 사람은 최용기 교수뿐이다. 나머지 얌전하고 완곡한 투정은 이미 위헌의 판단 자체가 헌법재판소의 몫이라는 사실의 위력에 짓눌려 있는 것이다. 동의는 하지 않지만 판결을 존중한다는 안철수 의원의 트위터 발언이 그 전형적인 예다. 풀어쓰면 “반항할 도리가 없잖아요. 그냥 받아들일게요”란 뜻이 아닌가? 그에게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안랩의 백신 기술로는 도저히 치료할 수 없는 막강한 컴퓨터 바이러스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19세기 영국의 법철학자인 존 오스틴은 법을 “명령에 구속되지 않는 자의 명령”으로 과격하게 정의했는데, 그의 이론이 200년 가까이 지나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에서 완벽에 가깝게 증명되고 있는 셈이다.

영국에는 헌법이 없다. 헌법재판소를 실질적 국가기구로 두지 않은 나라도 많다. 헌법은 완전한 논리로 명문화될 수 없는 당위적 최상위 규범이기 때문이다. 이는 대한민국이 헌법재판소를 설치하고, 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심판하는 고등헌법재판소를 설치하고, 그 위에 대헌법재판소를 설치한다고 해도 그 최종적 결정이 헌법의 정신에 부합한다는 어떤 보장도 없다는 자명한 사실로 귀결된다. 모든 재판관은 기계가 아니라 각자의 정치적 관점을 가졌으며, 더욱 크고 실질적인 권력에 대한 두려움에 휘둘리며, 사소한 실수조차 저지를 수 있는 인간이다. 헌재 재판관의 단순한 날짜 계산 실수로 부당하게 청구를 각하한 사건에 대해 2003년 대법원이 당사자가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결한 사례가 있다. 대법원은 그 이유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불복하거나 시정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단순한 날짜 계산 실수로 청구를 각하하는 행위’는 헌법이 정한 ‘재판받을 권리’를 헌법재판소가 영속적으로 침해한 것임에도 불복하거나 시정할 수단이 없어 대신 돈으로 보상받을 길을 열어준 것이다.

세계 헌법기관 회의체인 베니스위원회는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문을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정당 해산 결정이 헌법적 기준에 제대로 부합하는지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만약 해산 결정이 부당하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통합진보당 해산의 근거가 된 헌법 제8조의 다른 대목에 명시된 대로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할 정당을 국가가 앞장서서 박살내 버렸다는 뜻이 된다. 이때 우리는 표현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단지 헌재의 판단이 부정확했다고 말해야 하는가? 아니면 통합진보당에 적용된 헌법 규정을 위반한 것은 통합진보당이 아니라 사실 헌법재판소였다고 말해야 하는가?

손아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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