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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21년치 신년사’로 본 북한의 선택 / 김보근

등록 2015-01-11 18:52

총 21년치의 북한 신년사를 찾아봤다.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인 1995년부터 2012년까지의 공동사설과 2013년부터 시작된 김정은 제1비서의 3년치 육성 신년사들이다. 큰 흐름에서 북의 변화를 짚어보고, 김 제1비서의 북한이 어느 방향으로 향할 것인지 가늠해보기 위해서다.

무엇보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을 대표하는 정책들이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사라지고 만들어지는 과정이 눈에 띄었다. ‘공산주의’ ‘주체농법’ ‘혁명적 군인정신’ 등이 이런 변화를 상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산주의’는 김일성 주석의 정책을 함축하는 단어다. 그러나 북의 공동사설은 1995년과 1996년에만 공산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김일성 시대가 끝났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김 주석이 창안했다는 ‘주체농법’도 마찬가지다. 공동사설은 1995~1998년에는 해마다 주체농법을 언급했지만, 그 뒤로는 2000, 2005, 2010년의 3년만 등장시켰을 뿐이다. 2011년부터는 아예 언급이 없다. 이런 변화 뒤에는 다락밭농사 등으로 대표되는 주체농법으로는 식량난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두 단어를 대체한 것이 ‘실리’와 ‘농업혁명’이다. 1999년 공동사설에서 처음 등장한 ‘실리’는 평등을 강조해온 공산주의 개념과는 달리 실질적인 성과를 강조한다. 이 개념은 그 뒤 북이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 등을 통해 시장요소를 끌어안는 바탕이 된다. 2008년 이후 자주 눈에 띄는 ‘농업혁명’은 선진영농방법과 유기농법 등을 주요 농업정책으로 제시한다. 이 용어는 주체농법과는 달리, 포전담당제 실시 등 협동농장의 틀을 벗어난 개혁도 수용할 수 있는 중립성을 지니고 있다.

이 두 단어보다 더욱 직접적으로 김정일 시대를 대표하는 말이 ‘혁명적 군인정신’이다. 김일성 주석 3년상을 마치는 해인 1997년부터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한 해인 2011년까지 한해도 빠짐없이 신년사에 등장한 이 단어는 김정일 시대 정치·경제·사회정책의 핵심이다. ‘고난의 행군’ 등 어려웠던 시기에 군인들이 혁명적 정신을 발휘해 경제건설마저도 선도하고, 이런 ‘혁명적 군인정신’을 노동자와 당 간부 등 사회 구성원이 본받자는 것이 뼈대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사망한 직후에 발표된 2012년 신년사에서부터 ‘혁명적 군인정신’은 사라졌다. 김정은 제1비서가 추구하고자 하는 새로운 경제발전 방향과 맞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신년사를 통해 볼 때 김정은 제1비서를 상징하는 정책은 무엇일까. 아직은 꼭 짚어 얘기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 가지 가능성은 올해 신년사에 등장한 ‘경영전략, 기업전략’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원래 사회주의 기업들은 계획당국에서 할당된 생산량을 달성하는 것을 가장 중요시한다. 하지만 시장요소 활용이 늘어나면 사회주의 기업도 경영전략을 강화해야 한다. ‘경영전략’은 7·1 조치 이후인 2005, 2006, 2010년 공동사설에 등장했지만, ‘경제강국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강조하는 김 제1비서가 앞으로 자주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인민생활 향상의 성공은 시장요소 확대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2014년 신년사에 처음 등장한 핵·경제 병진노선의 경우 그 목표 중 하나가 “핵 보유를 통해 국방비를 줄이고 그 재원을 경제로 돌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안으로 발언권이 약화된 군부를 무마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밖에서 북에 대한 투자를 끌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과제들에 대한 김정은 시대 북한의 선택은 과연 무엇일까?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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