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대박 타령의 만담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우선 남북간의 군사적 긴장 완화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평화의 구축, 그것이 우리 국민의 복지 향상과도 직결되어 있다. 그런 맥락에서 존슨 대통령의 실패한 ‘위대한 사회’를 아쉽게 생각하며 회상하는 것이다.
우리는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을 대단히 훌륭했던 개혁정책으로 기억하고 있다. 사실 그 영향은 제2차대전 후의 일본과 남한에서도 지대했다. 진주한 미군과 함께 ‘뉴딜러’(New Dealer)라고 불리던 뉴딜정책 관료들이 와서 대대적인 개혁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뉴딜이 오랜 기간 계속되고(루스벨트 대통령 4선), 또한 그 이상주의적 개혁에 공감하는 지식인·관료들이 많아 뉴딜러라고 불리는 층이 형성된 것은 자연스럽다. 일본에서는 군벌 제거는 물론 재벌을 해체하고 노동운동을 북돋우는 등 여러 가지 획기적인 민주개혁을 하였다. 뉴딜에서 대규모 사회기반시설에 집중 투자한 것이 중요하지만 노조를 도운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와그너법이 특히 유명하지만, 프랜시스 퍼킨스 노동부 장관이 루스벨트 임기 내내 재임하면서 노조를 위해 애를 쓴 것도 빠트릴 수 없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의 농지개혁은 3단계가 된 셈이다. 일본 측이 미군의 방침을 미리 알고 개혁을 했다. 그런데 미군 측이 그게 미흡하다고 더 철저히 하라고 지시했다. 일본이 주권을 회복한 뒤 지주 측에 보상을 약간 더 하는 조치를 했기에 결국 3단계가 된 것이다.
한국의 농지개혁도 크게는 그러한 미군 정책의 틀 안에서다. 해방 후 모든 분야에서 개혁을 요구하는 준혁명적 분위기가 있었고, 이승만 대통령의 뜻과 조봉암 농림장관의 정책이 있기는 하였지만 미군 점령당국의 기본정책을 빼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여하간 그러한 민주당의 개혁적 전통에 따라 린든 존슨 대통령도 ‘위대한 사회’(The Great Society) 계획을 대규모로 착수했다. 월남전에 파묻혀 잘 소개되지 않았지만 그 계획은 대단한 것이어서, 만약에 월남전이 이 계획을 마비시키지 않았다면 뉴딜만큼 역사에 기록되고 존슨 대통령은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억되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측이 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번 미국 선거를 평가하는 ‘미국의 민주주의’ 기획물에서 뉴딜을 대공황이라는 국가적 트라우마를 겪은 뒤, 그리고 ‘위대한 사회’는 제2차대전이란 어려움을 겪은 뒤에 민주·공화 양당의 대립이 비교적 덜한 상태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고 평하였다. 최근에도 다시 다루어, 좌파는 ‘위대한 사회’의 복지계획과 차별금지 원칙이 없는 미국을 상상한다는 것은 전율을 느낄 일이라고 하고, 우파는 존슨의 유산을, 수백만명을 의존자로 만든 사회공학의 실패한 실험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미국 하버드대 교수 도리스 컨스의 <린든 존슨과 미국의 꿈>이란 유명한 저서가 있다. (남편인 리처드 굿윈은 케네디 대통령 스피치 라이터를 지낸 월남전 반대 논객으로 유명했는데, 미국 기자들과 함께 그의 집에 가서 의견을 들은 일이 있다. 그가 ‘위대한 사회’란 말을 만드는 데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대한 사회’는 존슨 나름의 ‘약속의 땅’을 제시하였다는 것인데 각 분야에의 많은 지원을 담고 있다. 컨스 교수가 열거한 것은 ①노인에게 메디케어(의료지원) ②젊은이에게 교육 지원 ③기업인에게 세금 환불 ④노동자에게 최저임금 인상 ⑤농민에게 보조금 ⑥직업 훈련 ⑦빈민에게 식량 ⑧무주택자에게 주택 ⑨흑인에게 법률 구조 ⑩인디언에게 학교 지원 ⑪불구자 재활 ⑫실업자 수당 증가 등등이다.
존슨의 말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나는 제국을 건설하거나 영토를 넓힌 대통령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나는 어린이를 교육한 대통령이 되기를 원한다. 배고픈 사람이 먹도록 돕고, 가난한 사람들이 살길을 찾게 하며, 모든 사람이 투표를 할 수 있게 하고….”
물론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이끈 흑인들의 대대적인 민권운동이 있었기에 가능했었지만 1964년의 민권법, 1965년의 투표권법 등은 그의 큰 업적이다. 그는 34년간 의원 생활을 하고 상원의 민주당 원내총무를 오래 했기에 의회를 다루는 데는 매우 능숙했다.
언론인 로버트 카로는 <린든 존슨의 시대>라는 저서에서 금권정치가로서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그의 ‘위대한 사회’는 교육 입법, 민권법, 빈민구제법 등으로 4반세기 전에 시작된 뉴딜이란 사회 변화를 최고조에 이르게 하였다”고 칭찬하며 그러나 월남전으로 그 흐름은 다른 방향으로 가고 말았다고 아쉬워했다.
‘위대한 사회’를 특집으로 다룬, 예를 들어 계간 <퍼블릭 인터레스트> 같은 잡지도 있다. 거기서 보면 이런 수치가 나온다. 1970년에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에 100억달러가 들었는데 그 3분의 2쯤은 사회보장세로 충당했고, 같은 해 초등·중고등학교에 30억달러가 소요되고, 지역사회 발전·빈민 구조 등에 그보다 약간 많이 소요되었다. 복지수혜자 지원에는 1965년보다 1970년에 30억달러가 더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같은 시기에 국방예산이 460억달러에서 770억달러로 늘어나 ‘위대한 사회’ 예산 증가분보다 더 많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존슨은 월남전쟁과 ‘위대한 사회’ 계획의 동시 추진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큰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내가 67~68년 미국에서 보고 들은 바로는 ‘위대한 사회’는 거의 잊혀지고 오로지 월남전쟁 찬반 논의와 반전운동의 격화뿐이었다. 칼리파노 보건·교육·복지 장관은 당시 언론에서 ‘국내 부통령’이라고 호칭하기도 하였는데, 그를 초청한 대학에서의 세미나는 별로 열기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내놓고 보니 존슨이 대단히 훌륭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뻔도 하였는데 케네디 등 그 전임자들이 저질러 놓은 월남전의 진흙탕에 빠져들어 참 아깝게 되었다.
<퍼블릭 인터레스트> 잡지에는 이런 교훈도 포함되어 있어 주목을 끈다. “사회입법이 되려면 직접 수혜자들보다 더욱 광범한 지지층이 있어야 한다. 정치적 개혁이 가능하려면 보다 많은 공공대중이 사회적 개입의 필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미국의 정치제도에서는 대통령이 관건이 되는 인물이다. 여러 분야에서의 대규모 개혁이 필요한 때 대통령 말고는 누구도 공공의 합의와 필요한 의회의 지지를 확보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우리 사회도 많은 분야에서의 복지 향상을 요구받고 있다. 요즘 정치를 보면 복지문제가 점차 그 중심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우리나라야말로 지금 존슨 대통령의 ‘위대한 사회’와 같은 일대 구상과 개혁이 필요한 때다.
그런데…. 근래 증세 논의가 활발한 듯했으나 그것도 주저앉고 말았다. 아주 잘해서 법인세 인상을 필두로 하여 마지막에는 주로 서민층에 부담을 주는 부가가치세까지 인상한다 하더라도 그것으로는 국민의 복지 향상에 한계가 뻔히 내다보인다.
요는 우리도 국방비 문제에 부닥쳐 있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고, 계속되는 국방비의 상승확대로 희망의 출구가 안 보인다. 방향을 바꾸어 평화구축의 길을 찾아야 하고 국방비를 상호 상승감축해 나가야만 한다.
안보라는 것은 그 원리상 절대안보를 요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상대방이 있는 것이기에 한쪽의 절대적 안보는 다른 쪽의 절대적 불안을 가져오고, 방치하면 상승확대의 악순환만 결과한다.
따라서 세련되고 정교한 지혜를 발휘하여 상대적 안보에 머무르고, 안보경쟁이 평화구축으로 상승감축으로 가도록 해야만 한다. 평화배당금을 얻자는 것이다.
통일대박 운운의 정부정책을 놓고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1층은 안 짓고, 2층을 짓는 격”이라는 명언을 했다. 박철희 서울대 교수는 아주 점잖게 “통일준비론이 선행하는 와중에 통일을 언제 어떻게 이루겠다는 과정론은 슬그머니 뒷전으로 밀려났다”고 꼬집었다. 통일대박 타령의 만담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우선 남북간의 군사적 긴장 완화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평화의 구축, 그것이 우리 국민의 복지 향상과도 직결되어 있다.
타산지석 - 남의 일에서 교훈을 얻는다. 그런 맥락에서 존슨 대통령의 실패한 ‘위대한 사회’를 아쉽게 생각하며 회상하는 것이다.
남재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