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12일 새해 기자회견을 보곤 “남북관계가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기존 대북정책에서 달라진 게 뭘까,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표현의 자유뿐 아니라 주민 갈등이나 안전 문제도 고려해 보겠다는 것 정도가 그나마 유연성을 보여준 대목인데, 이 정도에 북한이 흔쾌한 반응을 보일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대화는 양보와 타협을 전제로 한다. 상대의 얘기를 들을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마주앉아 봐야 결론은 뻔하다. 아무 소득 없이 얼굴만 붉히고 만다. 상대의 관심사에 귀를 기울일 마음도 별로 없으면서 “대화에 나오라”고만 한다면, 그건 대화 제의가 아니다. ‘대화 공세’이고 정치적 압박이다. 혹여 상대가 오해하고 있다면 먼저 오해를 풀려는 성의 정도는 보여줘야 대화 의지가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북한의 요구사항은 상황에 따라 종종 강조점이 바뀌곤 하니 종잡을 수 없는 구석도 있고, 다 들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대화를 하면 뭔가 진전이 있겠구나 하는 정도의 기대는 할 수 있게 해야 “그래 우리 한번 얘기해보자” 하고 나오지 않을까 싶다.
지난해 초 남북 사이에 대결의식이 남아 있던 어려운 상황에서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 것은 남북 고위급회담의 성과였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두 차례 회담에서 남북은 이산가족 상봉 행사 추진과 상호비방 중지, 고위급회담 추후 속개 등에 합의했다. 북쪽이 남쪽의 말만 믿고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합의한 정확한 셈법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남북관계 발전 구상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기대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 당시 수석대표였던 김규현 국가안보실 1차장은 회담 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가동을 위해선 남북 간에 우선 신뢰를 쌓아야 한다. 그 신뢰의 첫 단추가 이산가족 상봉 행사이기 때문에 우선 믿고 해야 한다. 설득을 많이 했고 북에서도 일단 그러면 믿고 한번 해보자 그런 차원에서 합의를 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북한으로서는 남쪽의 이산가족 상봉 요구를 들어주면 이후 5·24 조치 해제나 금강산 관광 재개 등과 같은 대가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결과는 다 아는 것처럼 이산가족 상봉 행사 말고는 제대로 된 게 없고, 남북관계는 여전히 최악이다. 북한으로선 얻은 게 없으니 어쩌면 “당했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이번 기자회견에서도 이산가족 상봉이나 교류협력 등에 대해 지난해와 거의 같은 얘기를 반복하고 있으니, 북한이 선뜻 신뢰할 수 있을까.
따지고 보면 북한의 자업자득인지도 모르겠다. 북한은 지지난해 박 대통령의 집권을 군사도발로 맞았다. 취임하기도 전인 2013년 2월 3차 핵실험을 하더니, 곧바로 한반도를 끝도 없이 긴장으로 몰아갔고 결국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에도 끄떡없던 개성공단까지 가동을 중단시켰다. 고약하기 짝이 없는 환영 인사였다. 이후에도 북한은 무인기 사건과 서해상 군사대결 등 긴장 고조로 남쪽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런 행태가 남쪽의 대북여론을 악화시킨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박 대통령이라고 다르랴. 그렇지 않아도 완고한 대북관을 더욱 경직시키지 않았을까.
그래도 북쪽이 어떻게 나올지 예단하고 싶진 않다. 북한의 실망감은 “말로만 대화를 말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이라”는 요구에 또렷이 나타나 있다. 한-미 군사연습 중단을 다시 들고나온 것도 그런 표현일 거다. 그러나 아직 박 대통령의 회견 내용을 정면 비난하지 않는 걸 보면, 어떻게 대응할지 장고에 들어간 것도 같다. 이제라도 북한이 대화에 나오도록 유도할 마중물 같은 걸로 대화 의지를 보여줄 필요는 없을까.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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