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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지역일꾼들은 왜 불안한가 / 이현숙

등록 2015-01-18 18:57

얼마 전 경남 통영에 잠시 들렀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통영은 그야말로 상전벽해였다. 남망산에서 내려다본 통영 전경은 보석으로 수놓은 듯 경이로웠다. 바다가 쏙 들어와 있는 강구안을 따라 집과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모습은 동피랑 벽화마을이었다. 먼발치에서 봐도 언덕배기에 있는 알록달록한 동피랑 마을 벽화는 도시 전체를 환하게 비췄다. 가까이 가서 본 동피랑 마을은 더 정겨웠다. 평일인데도 관광객 수십명이 줄지어 좁은 골목길과 계단을 오르내렸다. 인근 재래시장까지 이들의 발걸음은 이어졌다. 지역에 활기가 넘쳤다.

철거를 앞뒀던 동피랑 마을이 전국의 명소로 자리잡기까지는 열정과 헌신을 쏟은 지역조직과 일꾼이 있었다. 민관협치를 실천하는 지방의제 추진기구인 통영시 산하 ‘푸른통영21’과 실무 주역인 윤미숙 사무국장이다. 이들은 2006년부터 마을살리기와 마을공동체 사업 등을 추진해 통영경제와 사회의 변화를 일궈냈다. 공무원들과의 협업도 매끄럽게 이뤄졌다. 생활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 조직을 만들어 공동의 소득과 분배로 주민들이 주도할 수 있도록 판을 만들었다. 지난해에는 전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마을살리기 사례로 꼽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는 지역브랜드 대상을 수상했다. 유네스코 지속발전교육 공식 프로젝트로도 선정돼 인증서도 받았다.

그런데 최근 통영시가 윤미숙 사무국장을 일방적으로 해임해 논란이 일고 있다. 무기계약직인 윤 국장에게 계약기간 이틀을 남기고 느닷없이 연장하지 않겠다고 밝혀온 것이다. 당사자인 윤 국장도 당황했다고 하지만, 통영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간 추진하고 있던 마을 사업들이 좌초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나온다.

지역일꾼의 일자리 불안은 비단 통영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 지방선거가 끝나고 난 뒤 지역조직과 일꾼들이 한바탕 홍역을 치른 곳이 적지 않다. ‘로컬푸드 1번지’로 대한민국 농촌수도로 꼽히는 완주에서 지역사업의 변화가 점쳐지는 인사가 세밑에 있었다. 2010년부터 군과 함께 로컬푸드 등 마을공동체 사업과 주민 중심의 사회적 경제 조직을 지원해왔던 완주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의 직원 10여명을 모두 그만두게 했다. 군이 지역사업의 방향을 새롭게 잡고 그에 맞는 인력으로 꾸리겠다는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지역일꾼의 일자리 불안정 요인이 꼭 정치적 변화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지원사업 계약기간이 1년이다 보니, 많은 지역일꾼이 다음해를 기약할 수 없는 불안한 여건에서 일하고 있다. 역량강화나 자기계발은 꿈조차 꾸기 어렵다. 뜻있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는 자부심만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지난해 영국의 신임 시민사회부 장관이 내놓은 정책은 우리에게 시사점을 준다. 그는 공공서비스 예산을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와 지역사회로 점차 넘기겠다고 발표했다. 주민의 삶의 현장인 지역사회에서 직접 사회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이 더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란다. 사회적 경제 조직을 포함한 비영리 부문의 위탁운영이 잘될 수 있도록 지역일꾼의 역량강화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기금조달 등 지원체계도 만들고,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우려 한다.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지방자치시대가 시작된 지 20년, 지역에는 인구 감소, 지역경제 침체 등 난제들이 쏟아지고 있다. 민관의 꾸준한 협력과 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끌어내지 못하면 이런 난제를 풀기 어렵다. 주민들과 관계를 이어가며 앞에서 끌고, 때론 뒤에서 밀어주는 지역일꾼들의 일자리가 안정적이어야 하는 이유다.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h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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