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시론] 문제는 실천인문학이다 / 임호일

등록 2015-01-19 18:46수정 2015-01-19 18:46

20년 전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국내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이 책은 우선 제목에서 드러나는 모호성이 독자의 관심을 끌었다. “참을 수 없는”이 “존재”와 “가벼움” 중 어떤 것을 수식하는지 헷갈렸기 때문이다. 원문을 찾아보거나 소설을 읽지 않는 한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았다. 작가는 인간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존재의 가벼움을 참아내기 힘들다고 한 것이었다.

쿤데라의 소설을 읽은 지 강산이 두 번 변한 이 시점에 그 소설이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304명이란 생명이 물속에서 죽어가는 것을 빤히 들여다보면서도 손을 놓은 채 끝내 한 사람의 생명도 구하지 못한, 아니 구하지 않은 마당에 줄기차게 면피대책에만 골몰하는 당국자들, 죽은 자식을 가슴에조차 묻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오열하는 부모에게 이젠 잊을 때가 되지 않았느냐, 왜들 그렇게 난리냐고 떠들어대는 인간들, 이런 인간들과 함께해야 하는 세상이 참담하다. 부와 학력세습으로 얻은 윗자리에서 ‘아랫것들’을 윽박지르는 악덕기업주들의 갑질을 대할 때마다 분노가 치민다. 인간 존재를 한없이 가볍게 만드는 이 인간시장에서 나는 흉측한 벌레로 ‘변신’된 채 가족들로부터 버림받는 카프카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의 소외를 절감한다.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생명경시 풍조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물려준 고유한 얼굴을 서슴없이 성형의사의 칼에 내맡기(게 하)는 외모지상주의자들, 금방 드러날 거짓말도 기자들 앞에서는 진실이라고 천연덕스럽게 지껄여대는 이른바 지도층 인사들, 이렇듯 인간의 정체성을 유린하고 진실을 폭행하는 비루와 야만이 활개를 치는 세상에서 나는 인간 존재의 가벼움에 한없는 비애를 느낀다.

하지만 소외와 비애가 아직은 내 삶의 대지를 깡그리 침탈하지는 못했다. 내가 아직 삶에서 의미를 찾는 이유는 밀란 쿤데라 같은 작가들이 존재를 가볍게 만드는 세상을 부단히 고발하고 있고, 지배이데올로기가 곧 지배자들의 이데올로기이며, 전쟁의 승자는 전쟁을 지휘한 장군의 몫일 뿐, 승전국의 병사들조차도 패자일 뿐임을 고발하는 브레히트 같은 작가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능은 우리의 정신적인 영역의 극히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보잘것없는 존재의 삶 속으로 침잠해 보라”고 역설하는, 천재를 부정한 천재 뷔히너가 내 길라잡이이기에 나는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다.

인문학은 인간의 정신세계가 천착하는 모든 연구영역을 일컫는 학문이다. 인문학은 내 정체성을 상실하거나 타인의 정체성을 유린하지 않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학문이다. 인간의 정체성은 인간 공동체 속에서 구현된다. 내 안의 타자, 타자 안의 내가 공존할 때, 하이데거의 용어를 빌리면 “공동현존재” 의식을 공유할 수 있을 때만 인간의 정체성은 유지된다. 최근 인문학 강의가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정작 인문학의 산실인 대학에서는 ‘경영자’ 총장(이사장)이 인문학을 고사, 퇴출시키고 있는 현실,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자연과학뿐 아니라 경영학, 법학 등 모든 학문은 인문학이 그 뿌리로 정착될 때 비로소 인간을 위한, 인간적인 학문이 될 수 있다. 인문정신이 결여될 경우 과학은 문명의 이기가 아니라 인명 살상 무기가 되고, 법은 권력자를 위한 알리바이가 되며, 역사의 시곗바늘은 거꾸로 돌아가게 된다.

임호일 동국대 명예교수
임호일 동국대 명예교수
인문학의 중요한 속성은 비판정신이다. 어떤 현상 또는 현상의 원인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거부하는 사람들, 자신이나 자신이 처한 현실을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볼 줄 모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져 가는 우리 사회에서 지금 절실히 요청되는 것은 말로만의 인문학이 아니라 실천을 동반한 인문학, 즉 실천인문학이다.

임호일 동국대 명예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