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영화 기자를 하던 2000년대 초반, 굵직한 영화제가 부산, 전주, 광주, 부천 네 곳에 있었다. 그땐 지방자치단체와 영화제 조직 사이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영화제 운영에 대한 시의 요구를 받아들이냐 마느냐를 두고 영화제 집행위원장과 프로그래머가 다투고, 어떨 땐 시장이 앞장서서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쫓아냈다. 대부분 공식적 이유는 영화제 운영을 잘 못한다는 것이었지만 항상 뒷말이 많았다. 간혹 ‘우리 시가 돈을 댔는데 시에 직접적인 도움을 줘야 하지 않느냐’는 소리도 나왔다. 또 간혹 정치색, 지역색이 가까운 사람을 영화제 조직에 앉히려는 정치적 의도도 작용했을 거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나는 일이 있다. 영화제 개막식 때 집행위원장이 시장의 이름을 까먹어서 직함만 소개했다. 얼마 뒤 시장은 집행위원장 해촉안을 냈고, 결국 집행위원장은 쫓겨났다. 시가 내놓은 해촉 사유는 집행위원장이 교직을 겸직했다는 건데 설득력이 약했고, 영화인들은 ‘아무리 자기 이름 까먹었다고 쫓아내느냐’며 영화제 출품 거부를 결의했다. 결과적으로 망가진 건 영화제였고, 영화제에 돈을 댄 시 역시 손해였다. 그때가 10년 전. 정치와 예술이 그런 식으로는 상생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면 다행일 텐데.
부산국제영화제만 유일하게 지자체와 큰 갈등 없이 아시아 최대의 영화제가 됐다. 이게 한국 영화 발전에 끼친 영향이 막대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 영화제 첫 회가 열린 1996년, 수영만 야외상영장에서 수많은 사람과 개막작을 같이 보며 ‘영화가 이런 일도 하는구나’ 탄복했다는 한 친구는 뒤에 영화평론가가 됐다. 상업성 부족으로 수입이 안 되는 동시대의 해외 수작들을 이 영화제에서 보며 많은 감독들이 실력을 키워 2000년대 한국 영화 르네상스를 열었을 거다.
부산영화제의 높아진 위상을 드러내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박찬욱 감독에 따르면 외국 영화인들을 만날 때, 그들의 단골 인사말이 ‘부산영화제에서 보자’는 것이란다. 대만의 거장 허우샤오셴 감독은 이 영화제의 열기를 보고 후배들을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그럼 영화제가 영화 발전에만 기여했을까. 영화제로 인해 국제적으로 부산의 위상이 높아진 효과를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영화제가 없다면 가을의 해운대 해변과 마천루가 얼마나 스산할까.
부산시는 영화제에 간섭하는 일을 자제해 가며 영화제와 시정의 상생을 도모할 줄 알았구나. 여당만 찍는 이 보수적인 도시가, 문화에 관한 한 진보, 보수 가리지 않고 포용할 줄 아는구나. 내가 부산을 좋아하게 된 것도 이 영화제에 가면서부터다. 부산 음식의 맛에 빠져들었고, 드세고 왁자지껄한 부산 사람들의 말투에도 정이 들기 시작했다. 정치와 예술의 상생은 그렇게 하는 거다. 정치색, 지역색 가까운 인물로 조직을 꾸리는 조야한 방식이 아니라, 영화제의 독자성을 존중함으로써 그 간접적, 우회적인 효과가 만개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부산에서 시장이 집행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다고 한다. 직원을 공채하지 않고, 프로그램 선정의 보고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등등의 이유를 들었다. 이게 시청 산하조직도 아닌 별도 사단법인의 집행위원장을 쫓아낼 만한 이유인지, 부산지역 언론도 납득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언론의 추측대로 다큐멘터리 <다이빙 벨>의 상영이 원인이라면 영화제의 존재 이유조차 부정하는 일이 될 텐데, 시에서도 그건 아니라고 하니….
진짜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공론화할 수 있는 쟁점조차 내놓지 못한 채 사람을 쫓아내려는 건, 영화제를 망가뜨리고 시에도 피해를 주는 일이 될 게 불 보듯 뻔하다. 그걸 또 보고 싶지 않다.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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