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주자와 당 대표직은 궁합이 잘 맞지 않는다. 근래 정치사를 보면, 당 대표로서 성공해 대통령에 당선된 예는 박근혜 대통령뿐이다. 한나라당 시절 총재로서 사실상의 대통령으로 불리던 이회창이나, 몽골기병론을 앞세워 열린우리당 돌풍을 이끌어낸 정동영도 결국 실패했다. 반면에 당 대표는커녕 핵심 당직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비주류의 노무현, 이명박은 대통령이 됐다. 대통령제가 낳는 아웃사이더 선호 효과, 정치불신에 따른 반사이익, 양극 정치로 인한 극한대결 탓에 정치를 오래 했거나 당을 이끄는 자리에 있던 정치인들은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미국도 의회보다는 주지사 루트가 대통령 배출에 더 성공적이니 우리만 이런 건 아니다.
지금까지 새정치민주연합의 대표는 리더의 무덤이었다. 참 많은 정치인들이 대표를 맡았지만 예외 없이 실패했다. 임기를 채우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대표에서 물러난 후 지지율이 올라간 경우는 아예 없다. 안철수 전 대표의 예를 보면 인기만으로 안 되고, 손학규 전 대표를 보면 경륜만으로도 안 되는 게 당 대표다. 이렇게 물을 수 있다. 박근혜는 왜 성공했나? 두 가지다. 하나는 새로움이다. 박근혜라는 정치인이 리더로서 등장한 것은 2004년 총선 때다. 그때부터 그는 당의 낡은 질서에 맞서는 모습을 계속 견지했다. 주류가 됐음에도 새로움을 잃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당파성이다. 그는 당을 지지하거나 지지할 가능성이 있는 유권자에게 집중했다. 외연 확장이니 중도 포용이니 하면서 겉멋 부리지 않았다. 보수 정체성에 충실했다. 문재인 대표가 참고해야 한다.
문재인에게 당 대표직은 딜레마를 안긴다. 때로 당 대표로서 해야 할 역할과 대선 주자로서 취해야 할 자세에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후보에겐 캠페인이 필요하지만 대표에겐 리더십이 필요하다. 대표에겐 집토끼가, 후보에겐 산토끼가 중요하다. 언제나 그렇진 않으나 대표는 실리를 우선해야 하고, 후보는 명분을 앞세워야 한다. 문 대표가 대선 주자로서의 행보에 치중하면 다른 주자들도 협력보다는 경쟁에 나서기 마련이다. 당이 바로 서야 후보가 산다. 문 대표는 대표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또 하나, 혁신에 주력해야 한다. 지금까지 새정치민주연합은 통합노선을 취해왔다. 당을 합치는 것이나 야권연대, 후보단일화 등이 그 구체적 실례다. 결과는 총선과 대선 패배였다. 이제는 단호하게 혁신노선으로 가야 한다. 인물을 바꾸고, 정책과 행태도 정비해야 한다.
혁신, 특히 인물 교체는 어렵다. 당장 기성세력의 저항이 있기 마련이고, 새롭게 등장하는 사람이 더 낫다는 보장도 없다. 바꾸는 게 능사는 아니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이 표방하고 있는 복지, 경제민주화와 소속 정치인들 간에 상당한 부조화가 있다. 따라서 바꾸되, 그것도 대폭 바꿔야 한다. 잘 바꾸려면 충분한 검증과 내실 있는 기준이 중요하다. 저항을 극복하려면 살을 주고 뼈를 취해야 한다. ‘내 새끼’부터 쳐야 혁신의 명분과 동력이 생긴다. 탕평인사는 좋다. 하지만 이는 계파를 전제로 하는 타협이고, 혁신과 충돌하기 쉽다. 어느 계파든 못하면 걸러내야 한다. 혁신이 있어야 당의 실력이 좋아진다.
진보는 현실 안주보다 더 좋은 미래를 지향한다. 이미 실현되어 있는 이익을 지키는 보수와 달리 진보는 아무도 그 실상을 모르는 미래를 향해 간다. 이 불확실성 때문에 더더욱 강한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 강한 리더십은 좋은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이지 위험요인이 아니다. 문 대표는 강한 리더십으로 당을 혁신하는 데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어렵지만 다른 길은 없다. 당의 대표가 된 이상 피해서도, 피할 수도 없는 외길이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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