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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간통죄 / 여현호

등록 2015-02-16 18:33


조선 영·정조 시대에는 ‘치마를 당기거나 마주앉아 밥을 먹는 행위’도 간통의 증거였다. 영조가 수교(임금의 교령)를 통해 “다른 남자가 부인의 치마를 잡아당기거나 부인과 마주앉아 밥을 먹는 장면을 그 남편이 보고 화를 내다가 화가 지나쳐 잘못 사람을 죽였을 경우 모두 가벼운 형률로 처분하라”고 밝힌 까닭이다. 정조는 영조의 이런 수교와 ‘간통한 남녀를 현장에서 붙잡아 죽인 경우 불문에 부친다’는 <대명률>을 앞세워, 간통한 아내와 간통남을 살해한 남편 여럿을 석방했다.

이런 기준은 ‘아내의 간통’에만 적용됐다. 남편의 간통에 대한 아내의 분노는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했다. 조선 초기의 법률 문헌에도 남편 외의 다른 남자와 밀통하는 잠간(潛奸)에 대한 처벌은 있지만, 남편의 간통에 대한 처벌조항은 따로 없다. 이는 일부일처제가 정착한 대부분의 문화권이 공유하는 과거이기도 하다. 조선의 간통 처벌이 국가이념에 따라 여성의 정절 훼손을 국가가 응징한 것이라면, 다른 문화권에선 여성을 ‘남편의 재산’으로 간주한 측면이 두드러진다. 18세기 영국의 한 최고위법관은 간통을 ‘재산권에 대한 최고수준의 침해’라고 표현했고, 히브리어에서 남편과 주인이 모두 ‘발’(baal)로 발음된다.

우리나라에서도 1953년 형법 제정 이전의 대한제국 형법대전(1905년)이나 일제의 조선형사령(1912년)이 모두 간통한 유부녀와 그 상대 남자만 처벌했다. 형법 제정 당시에도 간통죄 폐지론이 없진 않았지만, 간통한 아내뿐 아니라 간통한 남편까지 처벌하도록 하는 선에서 논란 끝에 간통죄가 유지됐다. 당시의 축첩 관행에 대처하려 한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헌법재판소가 곧 간통죄의 위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2008년까지 네 차례의 합헌 결정과 달리 이번엔 위헌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간통이 여전히 많다는데도 간통죄 폐지가 당연시되는 것은 국민의 법의식과 사회 상황이 그만큼 크게 바뀐 때문이겠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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