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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박상옥을 ‘보크’하다 / 박용현

등록 2015-02-24 18:48

닉슨 미국 대통령에게 워터게이트 사건을 수사하던 콕스 특별검사는 눈엣가시였을 터. 수사망이 좁혀오자 닉슨은 1973년 10월20일 주말을 틈타 법무부 장관에게 특검 해임을 명령한다. 하지만 리처드슨 장관은 부당한 명령이라며 사표를 던진다. 이어 같은 명령을 받은 러컬즈하우스 부장관도 물러난다. 그다음 서열은 로버트 보크 송무차관. 그는 리무진을 타고 백악관에 들어가 장관 직무대행으로 임명된 뒤 콕스 특검을 해임한다. ‘토요일 밤의 대학살’로 불리는 이 사건은 훗날 법원에서 불법임이 확인된다.

보크 역시 자리에 연연해 부당한 명령을 따랐다는 오명을 쓰기 싫어 사임하려 했다는데, 그 속내는 알 수 없다. 그는 사후에 출간된 회고록에서 “당시 닉슨 대통령이 연방대법원 대법관 자리를 약속했다”고 밝혔다. 이듬해 닉슨의 하야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지만, 대신 레이건 대통령이 1987년 그를 대법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명민하지만 극우적인 법률가로서 인종차별을 옹호하고 여성 등 소수자의 권리를 부인해온 그의 행적이 인사청문회를 달궜다. 또 입법·사법부보다 행정부를 우위에 둬야 한다는 그의 신념이 첨예한 쟁점이 됐다. 대통령의 안위를 위해 법 원칙을 어긴 ‘토요일 밤의 대학살’에서 그가 보였던 태도가 단적인 예였다. 그는 진보적 시민사회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했을 뿐 아니라, 보수 쪽에서도 열광과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결국 상원 인준 투표는 42 대 58이라는 역대 최대의 표차로 부결됐다. 공화당에서도 6표가 이탈했다.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이 인사청문회의 여파로 ‘보크’(bork)는 ‘누구를 낙마시키기 위해 집중 공격한다’는 뜻의 동사로 쓰이기 시작했고 2002년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도 등재됐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는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수사하면서 리처드슨이나 러컬즈하우스가 아닌 보크의 길을 걸었다. 지금 그를 ‘보크’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후의 운명은 보크와 다를까.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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