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다. 각종 국제재판소 재판관도 여럿 배출했다. 그래서인지 요즘 한국을 외교강국으로 인식하고 있는 외국인들을 많이 만난다. 그런데 한국 외교정책의 기조가 도대체 뭐냐는 물음에 답변할 수가 없다.
19세기의 미국 외교는 유럽 열강이 미주 대륙에 개입하는 것을 내정간섭으로 규정하는 ‘먼로 독트린’을 내세웠다. 영국의 전통적 외교정책은 유럽 각국들의 이해관계의 균형자 역할을 수행하는 세력균형 외교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일본 외교는 헌법의 평화주의에 따른 방위정책을 유지하면서, 자립성과 역동성을 확립하는 실리외교가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한국 외교정책을 바라보자면 ‘외교는 국내정치의 연장’이라는 말이 실감날 뿐이다. 여러 정권을 거치면서 그때그때의 국내정치적 필요에 의해 한국 외교는 활용되어 왔다. 보수정권의 친미외교가 그랬고, 노무현 정부의 탈미외교가 그랬다. 이명박 정부 말기부터 시작해 현 정부로 이어지는 일관된 일본 때리기와 대북한 압박정책은 그 시기 정권의 스캔들이나 국가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활용된 측면이 강하다. 한마디로 국내정치에 종속된 게 우리 대외정책의 모습이다.
대외정책의 한 분야가 제구실을 못하면 다른 분야에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안보를 우방에 의존하고, 경제를 대외무역에 크게 의존하는 국가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대내정치에 영합한 대가는 경제외교의 비용으로 돌아온다. 극단적인 반일 정책과 대북한 강경 노선이 국민한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보수진영 결집의 효과를 가져다주지만, 이에 필요한 비용은 국민경제의 몫이다. 미국이 오스트레일리아와 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뉴질랜드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해주지 않고 있는 이유를 아는가. 뉴질랜드가 반핵운동의 선두에 서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우리의 대일, 대북한 강경노선을 묵인하거나 받쳐주는 대가로 양자 통상·안보 문제에서 가중된 압력을 가하고 있다. 우리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참여에 선결조건을 요구하고, 이를 대부분 수용한 한국에 대해 협상 참여를 결국 거절했다. 앞으로 이슬람국가(IS) 등의 테러리즘 대응을 위한 우리의 적극적 참여도 요구해올 것이다.
외교가 ‘권력의 시녀’가 되면, 손쉬운 국내정치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과거사와 위안부 문제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일본과 핵무기를 바탕으로 깡패외교를 벌이는 북한에 대해 외교적 압박을 가할 필요는 있으나, 그것이 여러 세대 동안 쌓아온 우리 외교의 자산들을 한꺼번에 날려버리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권은 바뀌고 국내정치의 방향은 보수와 진보를 오간다. 그럴 때마다 외교가 같이 널뛰기해서야 되겠는가. 외교관은 장기적 국익을 위해 뛰는 첨병이다. 근시안적인 국내 정치인들이 내놓는 무리한 요구를, 오랜 동안 쌓아온 연륜과 전문성으로 극복해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요즘, 우리 외교는 ‘구멍가게 외교’이고, 외교부는 정치인이 그려주는 정책방향대로 죽도록 디테일만 챙기는 곳이라는 목소리가 크다. 매년 재외공관장 회의가 개최되는데, 거기서 새로운 외교정책이 채택되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글로벌 한국의 대외정책 책임부서는 다양한 의견 제시와 토론을 거쳐, 장기적 국가이익 확보를 위한 정책방향을 조율하고, 실리외교의 수단들을 쌓아올려야 한다. 세계 곳곳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는 우리 젊은 외교관들이 많다. 그러나 이들이 어느 순간 너무나 정치적인 관료조직의 위계질서 속으로 사라져간다. 박근혜 정부는 제2기로 향하고 있다. 도대체 우리 외교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싱가포르국립대 방문교수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싱가포르국립대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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