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23일자 조선일보 갈무리.
[야! 한국사회] 달관이냐 체념이냐
2년 전 ‘각성이냐, 상실이냐’라는 칼럼을 이 지면에 썼다. 일본에서 화제였던 사토리족(悟り族)에 관한 글이었다. 사토리는 ‘깨달음’ ‘득도’를 의미하는데,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이면서 안분지족하는 일본의 젊은 세대를 가리키는 신조어다. 대개는 같은 지면에 같은 소재를 재론하지 않지만, 원칙을 한번 굽히려고 한다. 이제 와 사토리족 담론이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뜨면서’ 현실을 기묘한 방식으로 왜곡하고 있어서다.
얼마 전 <조선일보>는 “‘달관세대’가 사는 법”이라는 특집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달관세대’란 사토리족의 <조선일보>식 표현이다. 이 시리즈의 문제는 너무 많아 ‘빨간 펜 첨삭’이 필요할 지경인데, 가장 심각한 오류를 두 가지 꼽을 수 있다. 첫째는 ‘침소봉대’다. ‘“월100만원 벌어도 괜찮아” 덜 쓰고 잘 논다’ 기사는 어떤 젊은이의 하루 일과를 시간대별로 쪼개 어디에 얼마나 돈을 썼는지를 보여준다. 읽어보니 확실히 돈을 거의 쓰지 않고도 나름 행복하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이었다. 그런데 가장 큰돈이 들어가는 항목들, 즉 주거비, (외식 아닌) 식비, 광열비, 각종 세금과 보험료 등을 누구 돈으로 충당하는지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 젊은이들 대부분이 “서울대”와 “서울의 명문대”를 나왔다고 한다. 과연 <조선일보>가 말하는 “적게 벌고 느긋하게 살아도 괜찮은” 사람들은 전체 젊은이들 중 몇 퍼센트나 될까.
또 하나 문제는 ‘맥락절단’이다. <조선일보>는 두 나라에 엄연히 존재하는 사회적 조건들의 차이를 태연히 무시한다. 일본도 불황이고 한국도 불황이지만 그 불황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처한 환경은 사뭇 다르다. 우선 두 나라의 최저임금부터 살펴보면, 2015년 한국 최저임금은 5580원이고 2014년 10월부터 적용된 일본 최저임금은 780엔(7250원)이다. 일본은 물가가 비싸니 당연히 최저임금도 높은 게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물론 일본 물가는 비싸다. 하지만 의외로 생필품과 중저가형 상품의 체감물가는 한국보다 싸다.
양국 젊은이들이 적은 돈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대표적 프랜차이즈 식당의 메뉴 가격을 비교해 보자.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김밥 프랜차이즈에서 파는 제육덮밥 가격은 2015년 2월 현재 4500원이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덮밥 프랜차이즈에서 파는 소고기덮밥 가격은 380엔, 우리 돈으로 3500원이다(작년 연말 300엔에서 380엔으로 인상). 쉽게 말해 일본 젊은이들이 한 시간 아르바이트해서 두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반면, 한국 젊은이들이 두 끼를 먹으려면 그 두 배를 일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의 차이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한국의 고용주는 매우 높은 확률로 임금을 주지 않는다. 2014년 연말 기준으로 한국의 임금체불액은 1조3000억여원이었고 임금이 체불된 노동자 수는 무려 29만3000여명이었다. 반면 한국보다 훨씬 경제규모가 큰 나라인 일본의 임금체불액은 3000억원 선에 그치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에서 노동한다는 것은 받는 돈은 적고, 물가는 비싼데, 그나마 그 돈을 높은 확률로 떼인다는 걸 의미한다. 당신, 이래도 ‘달관’할 수 있는가?
한국의 젊은이들이 달관한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필시 ‘체념’이거나 ‘포기’일 게다. 아무리 발버둥치고 악을 써도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없어서, 그래서 눈을 감고 한숨을 쉬며 움직임을 끝내 멈춘 이들을 향해 “깨달음을 얻으셨네요”라고 말하는 건 얼마나 가학적인가. <조선일보>는 자족적인 삶을 사는 젊은이들 몇몇을 앞세워 이 끔찍한 사회를 만든 일말의 책임마저 벗어던지려 한다. 이미 기성세대에 진입한 사람으로서 참담하고 부끄러울 뿐이다.
박권일 칼럼니스트
박권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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