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시론] 선진국엔 없고 한국에는 있는 것 / 나임윤경

등록 2015-03-02 19:19

1991년 상영된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은 한국 사회에 해외 입양에 대한 공론을 이끈 첫 영화이다. 한국전쟁 직후 시작된 해외 입양이니, 초기 입양아들은 이제 머리 희끗한 중년 혹은 주름진 노년이 되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서구로 보내진 이들에게 공식 사과했지만, 단 한 번의 사과가 많은 것을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2007년부터 국내 입양이 해외 입양을 앞지르기 시작했고, 2008년부터 해외 입양은 매해 10%씩 줄고 있다. 정부는 2016년 입양에 관한 헤이그협약 비준을 준비하고 있으며, 한 입양인 권익 옹호 단체는 같은 해 해외 입양을 전면 중단하거나, 늦어도 평창 동계올림픽까지는 해외 입양을 전면 폐지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버려지는’ 아이들에 대한 묘책은 아직 없다. 그 와중에도 ‘일등만을 기억’하는 사회답게 한국은 출생 직후 프랑스로 입양되어 장관이 된 플뢰르 펠르랭의 일화 등으로 잠깐씩 들뜨기도 했다. 물질과 성과만을 좇는 한국 사회가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이후에도, 장관이 될 수 없었던 ‘수많은 수잔’, 그들을 잊고 지냈다.

2월 초 2주간 스위스 몇몇 도시에서 만난 한국 입양인들은 40년 넘게 ‘스위스 사람’으로 사는 동안 백인과 다른 외모에서 비롯된 정체성 혼란과 원(原)가족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 등으로 힘든 삶을 살았다고 말한다. 우울증 치료 중인 한 입양인은 한국 고아원 시절부터 우울했다고 기억한다. 또 다른 입양인은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김치를 맛본 순간, 비로소 평생 코끝에서 맴돈 냄새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이 수십년 전 그 어딘가에서 경험했을 목소리로, 표정으로, 냄새로, 노랫소리로 고향을 잊지 못하는 동안, 그 고향 사람들은 철저히 이들을 잊고, 저출산율을 고민해야 할 만큼 적은 수의 자녀를 낳아 애지중지하며 잘 먹고 잘 살아왔다.

그러나 한편에서 ‘어떤’ 아이들은, 아버지와 다른 가족의 존재는 처음부터 없었던 듯, 그렇게 예나 지금이나 사회로 버려진다. 성장 제일주의의 그 사회는, 돈과 맞바꿔 미국으로, 유럽으로 이들을 다시 ‘버린다’. 그리고 그중 누군가 ‘유명인’이라도 되면 거리낌없이 좋아라 한다. “그래, 넌 잘 간 거야. 여기 있었으면 니가 뭐가 됐겠니?”라는 생각도 빼놓지 않는다. 한국은 아이들을 보내며,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넓은 집과 여유로운 식탁, 자기 아이와 차별 않고 입양아를 보살필 이타적이고 자애로운 백인을 상상했던 걸까.

그런데 만일 적잖은 입양인들이 정반대의 환경과 양부모 아래서 버티듯 겨우 살아냈다면. 그래서 스물다섯에 처음으로 극장엘 갔고, 마흔살에야 첫 휴가를 가졌다고 말한다면. 외로움에 지쳐 술과 마약에 중독돼 일찍 생을 마감했다면. 그래도 “넌 잘 간 거야”라고 말할 텐가. 비교적 빨리 절대빈곤을 탈피하고 산업화를 이룬 한국은 80년대 초반부터 합계출산율 2.0을 맴돌며 저출산국 반열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도, 지금도 ‘어떤’ 수천, 수만명의 아이들은 해외로 보내지고 있다. 저출산율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인 한국이 여전히 아이들을 해외로 내보내고 있는 이 모순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나임윤경 연세대 문화학협동과정 교수
나임윤경 연세대 문화학협동과정 교수
엄마에게 모성 실천은 의무 아닌 권리이며, 구성원의 권리행사를 돕는 사회적 보살핌은 ‘좋은’ 사회의 의무이다. 이 의무를 기꺼이 실천하는 ‘선진국’에선 혼인 여부나 나이에 상관없이 권리로서의 모성이 실천된다. 따라서 해외 입양은 ‘무책임한 사회의 모성적 권리가 다른 사회로 팔려 가는, 반인권적 상행위’인 것이다. 사회가 보살핌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엄마가 모성적 권리를 내려놓으려 할 때 입양이, 그것도 국내 입양만이 ‘고려’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해외 입양은 선진국엔 없고, 한국에는 있다.

나임윤경 연세대 문화학협동과정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