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화 상지대 교수
<시경>(詩經)에 진퇴유곡(進退維谷)이란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는 곤란한 상황을 일컫는 말로 나온다. 상지대 분규를 처리하는 교육부의 상황도 그렇다. 상지대 해법으로 임시이사 파견론과 사학 자율성론이 대립했는데, 임시이사 파견론은 정의적 관점을 내세우고 사학의 자율성론에는 현실적 이해관계가 개입되어 있어 일도양단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황우여 부총리도 이 대립하는 양론 사이에서 적잖이 고심했을 것이다.
그 교육부가 상지대 감사 3개월 만에 고심참담한 타협주의적 해법을 내놓았다. 김문기는 해임하되 임시이사는 파견하지 않는 방안이다. 임시이사를 파견하지는 않지만 김문기를 해임하는 것으로 전자의 요구에 부응하고 김문기를 해임하는 대신 이사회를 보장해주는 것으로 후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절묘한 정치적 타협책을 제시한 것이다. 이 해법을 받아든 대립하는 양자는 울지도 못하고 웃지도 못할 테니 과연 교육부는 성공한 것일까?
먼저, 교육부가 사학비리의 상징이자 상지대 분규의 핵심 인물인 김문기 총장을 해임하기로 결정한 것은 매우 잘한 일이다. 복잡한 이론이나 논거를 들먹일 필요 없이 잘한 일이고 이렇게 해야 한다. 사학비리를 저지르고 분규를 유발하여 학교의 본질적 책무를 소홀히 하면서 교수와 학생을 괴롭히는 운영자에게는 일벌백계의 조처를 취한다는 단호한 정책의지를 표방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학의 적폐인 사학비리를 엄단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비정상의 정상화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타협이 대가를 요구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절묘한 타협책으로 교육부는 스스로 시험대에 올라섰다. 첫 시험대는 정책의 균형성 문제다. 김문기 총장 3개월 시점의 감사로 김문기 총장을 해임하게 되었는데 김문기의 잘못이 이사회 4년 동안의 잘못보다 중하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학교를 파행으로 내몰고 김문기를 총장으로 선임한 것도 이사회다. 김문기가 해임 사유라면 이사들은 마땅히 구속 사유인데 이 불균형을 설명할 길이 없다.
두번째 시험대는 김문기 총장의 해임을 관철하는 정책의 지속성 문제다. 교육부는 60일 안에 김문기를 해임하라는 행정지시를 내렸는데, 실현 가능성이 미지수다. 이사회가 거부할 수도 있고, 법적 투쟁을 선택할 수도 있고, 논리적인 이유를 들어 시한을 무기한 연장할 수도 있고, 해임 요구를 무시하고 경징계로 낮추어 결정할 수도 있다. 과연 교육부가 60일 시한을 엄수하여 해임을 관철할지 두고 볼 일이다. 60일 후에 김문기 해임이 실현되지 않으면 교육부가 ‘해임 논란’에 직면할 것이다.
세번째 시험대는 사학 정상화를 향한 정책의 확장성 문제다. 사학에서 총장과 이사회는 한 몸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최종 책임은 이사회가 진다. 사학의 문제는 총장직에서 불거질 수도 있고 이사회에서 불거질 수도 있는데 피선임자인 총장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이사회의 정상화를 도모하기 어렵다. 교육부의 결정은 사학이 아무리 문제를 일으켜도 이사회의 지배구조를 겨냥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사학재단에 전달할 가능성이 있다.
교육부의 결정으로 지난 5년간 분규를 겪어온 상지대는 대학 정상화의 실낱같은 희망을 발견하게 되었지만 동시에 교육부로부터 더 긴 고통을 요구받게 되었다. 혼란은 더욱 격화될 것이다. 교육부가 승인한 이사들이 이사회 첫날 교수 4명을 징계 회부했다. 교육부가 교육의 원칙을 포기하고 어정쩡한 타협적 해법을 선택한 후폭풍이다.
교육부의 이번 결정은 최종 결정이 아니라 긴 결정의 첫 과정에 불과하다. 마지막 결정이 내려지는 날까지 교육부는 상지대와 공동운명체가 될 수밖에 없다. 교육부는 사학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재검토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정대화 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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