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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석좌교수 / 여현호

등록 2015-03-17 18:42수정 2015-03-17 18:42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루카시안 석좌교수 명단은 그대로 과학사다. 1664년 초대 석좌교수인 아이작 배로는 미적분학의 기본 정리를 소개했고, 2대 아이작 뉴턴은 물리학·수학의 기초이론을 세운 근대과학의 선구자다. 지각평형설의 조지 비덜 에어리와 기계식 컴퓨터를 개발한 찰스 배비지가 각각 10대와 11대, 50년 넘게 재임하면서 수리물리학 등에서 업적을 남긴 조지 가브리엘 스토크스가 13대 루카시안 교수였다. 양자역학의 이론체계를 세운 폴 디랙이 15대, 그리고 스티븐 호킹 박사가 17대였다. 지금은 끈 이론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인 마이클 그린이 그 자리에 있다. 그 상징성 때문인지, 텔레비전 시리즈 ‘스타트랙’에서 창백한 얼굴의 인공지능 로봇으로 등장하는 데이터 소령은 2395년의 루카시안 석좌교수로 설정됐다.

케임브리지 대학에는 이밖에 150년 동안 역대 교수와 연구원들이 노벨상 29개를 수상한 실험물리학 분야의 캐번디시 석좌교수, 1863년 이후 9대째인 순수 수학의 새들러리안 교수직 등이 있다. 미국에도 인문학 분야의 여러 대학교수들이 선정되는 존 듀이 석좌교수 등 석좌교수 제도가 널리 퍼져 있다. 애초 석좌(碩座)교수(chair professor)는 그렇게 돈을 낸 이의 이름을 따되 각 분야에서 학문적 성취를 이룬 당대의 석학을 영입하려는 것이었다.

1985년 시작된 한국의 석좌교수 제도는 그 취지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듯하다. 국공립대학의 석좌·초빙교수 가운데 3분의 1은 학문과 거리가 먼 정계·관계·재계·군 출신이고, 그중 60%는 강의도 하지 않는다. 사립대도 다르지 않다. 이완구 국무총리는 2010년 우송대 석좌교수로 특강 6번에 6천만원을 받았고, 한 전직 국회의장은 강의 한 번 없이 5천만원을 받았다. 급기야 성추행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정치인이 석좌교수로 재임용될 뻔하기도 했다. 법관의 독립을 유린한 이가 법학 석좌교수가 되는 판이다. 석좌교수라기엔 창피하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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