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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한자 병용’은 공든 탑 허물자는 것 / 김영환

등록 2015-03-19 18:37수정 2015-03-19 22:21

이 글은 <한겨레> 3월10일치에 실린 김창진님의 ‘초등교과서 한자 병기 찬성한다’에 대한 반론이다. 김님은 국한 혼용이나 병용은 세종대왕이 글을 적은 방식으로서 오랜 전통이고, 한글 전용은 개화기 때 서양 선교사들과 미국인 서재필 등이 시작하였는데, 미 군정청과 정부의 강요로 한글 전용이 이루어졌다고 보면서 민족 주체성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낱낱이 따져 보자.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 때 한자 혼용을 의도했는가라는 물음에 답해 줄 수 있는 자료가 많지 않아 쉽게 결론을 낼 수 없다. 그렇지만 이 사실이 중요한 것 같지 않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역사적 산물이 본디 의도와 다른 의미를 띠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역사에서 행위자의 의도와 정반대의 결과를 불러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글 전용을 서양인이 처음으로 시작했던 것은 아니다. 한글 소설의 전통이 있었고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에도 정약종이 쓴 한글만으로 된 천주교 교리서 <주교요지>도 있었다. 외세와 정부의 강요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독립신문>의 한글 전용이 서재필 혼자만의 결정은 아니었고 주시경의 공헌도 컸다. 서재필을 미국인이라고 하였는데 형식논리에 따른 좁은 생각이다.

한글로만 쓰기는 민족 주체성과 연관이 깊다. 사대 모화는 유학에서 비롯된 조선의 국시였다. 오래전부터 우리말을 ‘방언’이라 일컬었는데 이는 우리가 천하 체제 속의 한 제후국임을 전제한 표현이다. 이른바 ‘동문’(同文) 사상에 따라 중국과 다른 글자를 쓰면 오랑캐가 된다고 여겼다. 한글은 학문과 교육에서 쓰지 않는 천한 ‘언문’이다. 수백년을 제대로 쓰지 않던 한글을 정치와 교육의 매개로 쓰게 된 것은 혁신이었다. 한글은 또한 지배계급의 문자 독점을 깨뜨린 민주주의의 상징이다. 한글의 우수성을 전자시대의 우리는 날마다 실감하고 있다. 알파벳 문화권의 서양 사람들이 알파벳으로서의 한글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런 사실은 한글 전용의 정당성 문제와는 무관하다. 서양인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로부터 한글 전용의 부당성을 추론하는 것은 일종의 발생론적 오류에 속한다. 프랑스 신부가 만든 변형된 로마자 알파벳을 채택하고 있는 베트남을 보라. 민족주의자들마저 반감 없이 쓰고 있다. 우리에게는 쉽고 대중적인 한글이라는 훌륭한 대안이 있어 한자문화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미 군정청과 정부가 한글 전용을 강요했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정부가 그런 말을 한 적은 있으나 지속적으로 그런 정책을 펴지는 않았다. 사실상의 방임 정책이었는데 그나마 최근 20년 동안은 정부가 앞장서서 지나치게 영어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우리말을 크게 훼손하였다.

국한 혼용체가 일본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번져 가는 데 일본이 큰 역할을 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대한매일신보>는 한글 전용판과 국한 혼용판을 따로 냈었는데 1910년 8월30일부터 총독부 기관지 한자 혼용 <매일신보>로 제호가 바뀌었다. 총독부가 국문 전용 신문의 맥을 끊은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김영환 한글철학연구소장·부경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영환 한글철학연구소장·부경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한자 병용은 곧바로 한자 혼용으로 이어진다. 이는 알파벳으로서의 한글의 우수성을 사실상 빈말로 만들고 한글을 일본의 가나처럼 음절 글자로 쓰자는 주장이 된다. ‘한자 혼용 또는 병용은 일본식 말글살이’라는 주장을 부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글 전용 교육은 교육이 사회 전체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낸 모범적인 경우다. 40년 넘게 공들여 쌓아온 탑을 애써 허물어 버리자는 게 초등 한자 병용 교과서다.

김영환 한글철학연구소장·부경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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